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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왕과 사는 남자> 리뷰 (유해진, 박지훈, 역사)

친구한테 먼저 연락이 왔습니다. 영화 보고 나왔다고, 눈이 너무 부어서 지하철을 못 탈 것 같다고. "박지훈 눈이 너무 슬퍼. 진짜 너무 울었어." 딱 그 한 마디였습니다. 그 문자를 받고 저도 바로 예매를 했습니다. 평소에 사극을 즐겨 보는 편은 아닙니다. 계유정난, 단종, 엄흥도. 교과서에서 배운 건 알지만 솔직히 이름 외우기 바빴던 기억만 납니다. 그런데 막상 극장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12세에 왕이 되어 이듬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먼 산골짜기로 쫓겨난 열다섯 살 아이. 그 아이의 눈을 보는 순간 교과서 속 단종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불이 켜졌을 때, 주변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습니다. 저도 ..

카테고리 없음 2026. 6. 25. 20:27
영화 <페어런트트랩> 리뷰 (포커 한 판, 오두막의 밤, 공항의 재회)

어릴 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할리가 런던에 처음 도착하는 장면에서 숨을 참았습니다. 수영장에서 마주친 두 소녀가 서로의 얼굴을 보는 그 순간, 거울을 보는 것 같은 그 정지된 2초가 지금도 선명합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나한테도 어딘가에 나랑 똑같이 생긴 애가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1998년에 만들어낸 마법이었습니다.페어런트트랩은 단순한 가족 영화가 아닙니다. 이혼한 부모, 다른 대륙에서 자란 쌍둥이, 그리고 두 아이의 작전. 이 뼈대만 보면 흔한 설정 같지만, 낸시 마이어스는 이걸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 지금 다시 봐도 촌스럽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

카테고리 없음 2026. 6. 24. 23:45
영화 <계춘할망> 리뷰 (손녀, 할망, 제주)

이 영화를 혼자 보길 정말 다행이다 싶었어요. 옆에 누가 있었다면 민망해서 쩔쩔맸을 것 같습니다. 내용이 무거운 것도 아니고,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영화를 큰 기대 없이 켰습니다. '아, 할머니랑 손녀가 제주도에서 감동적으로 사는 이야기겠구나.'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표면은 따뜻하고 잔잔한데, 속에는 꽤 무거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기, 거짓, 죄책감, 그 위에 덮이는 사랑. 그게 뒤섞이는 방식이 이 영화를 단순한 '가족 영화' 이상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손녀 - 혜지라는 이름을 빌린 은주이 영화의 핵심 반전은 꽤 충격적입니다. 12년 만에 할망을 찾아온 '혜지'는 사실 진짜 손녀가 아닙니다. 진짜 혜지는 ..

카테고리 없음 2026. 6. 24. 14:21
영화 <피넛버터팔콘> 리뷰 (맞섬, 관계, 용기)

가끔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바로 그런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로드무비인 줄 알았습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청년이 꿈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라기에 따뜻한 감동 정도를 예상했어요.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제 머릿속에 남은 것은 감동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여운이었습니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많은 것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반대로 누군가는 세상이 정해놓은 한계 속에서 출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우리를 가두는 것은 장애일까, 환경일까, 아니면 스스로 만든 두려움일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그 질문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맞섬 - 꿈을 향해 도망친 것이 아니라, 꿈을 향..

카테고리 없음 2026. 6. 24. 00:21
영화 <매드 댄스 오피스> 리뷰 (공감, 리듬, 관계)

평일 저녁, 회사에서 나오는 길에 무작정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옮긴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일이 안 풀렸어요. 분명 열심히 했는데 결과는 다른 사람 몫이 되고, 회의실에서는 제 의견이 묵살되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그냥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예매한 영화가 바로 '매드 댄스 오피스'였어요. 솔직히 큰 기대 없이 들어갔습니다. '매드 댄스? 미친 듯이 춤추는 건가?' 포스터만 보면 그냥 가볍게 웃고 나올 수 있는 코미디 같았거든요. 그런데 상영관 불이 켜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제 하루를, 제 직장 생활을, 제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거든요. 이 영화가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와닿았는지, 그리고 왜 지금 이 글을..

카테고리 없음 2026. 6. 22. 08:43
영화 <하이파이브> 리뷰 (우연, 톤, 추격)

극장 나오면서 친구한테 제일 먼저 한 말이 "야쿠르트 아줌마가 이렇게 멋있어도 되냐"였습니다. 진지하게요. 슈퍼히어로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셨을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장르 영화가 나오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요. 는 그 질문에 나름의 답을 내놓은 영화였습니다. 거창한 떡밥이나 세계관 확장 같은 건 없지만, 보고 나니까 묘하게 계속 생각나는 구석이 있더라고요. 오늘은 그 이유를 좀 풀어보려고 합니다. 우연 - 장기 기증으로 시작된 능력설정 자체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죽은 어떤 사람의 장기가 심장, 폐, 신장, 간, 각막 이렇게 다섯 명에게 나눠 이식되는데, 받은 사람들이 하나씩 초능력을 갖게 됩니다. 태권도장 딸인 완서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세지고, 작가 지망생 지성은 숨을 무한정..

카테고리 없음 2026. 6. 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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