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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주의


    수능 보던 날 수리1영역 주관식 1번. 쉬운 문제입니다. 근데 그 문제가 계속 안 풀렸습니다. 손이 덜덜 떨렸고, 시간은 자꾸 가고, 당황하니까 더 안 풀렸습니다. 결국 그냥 2라고 썼습니다. 찍은 거죠. 근데 그게 맞았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맞았는데…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제대로 풀어서 맞혔다면 더 좋았을걸 뭔가 억울한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어쨌든 다행이고 좋긴 했는데 뭔가 찜찜했습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고 나니 20년도 더 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포스터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공식 포스터

     

    질문을 포기한 수학

    저는 수학을 포기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중위권 정도는 유지했습니다. 어찌어찌 열심히 해서 거기까지 갔습니다. 근데 정확히 알고 있다는 시원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어느 단계에서부터 막혔는지도 모르는 채로 계속 올라온 기분이랄까요.


    이유는 있었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생겨도 질문을 못 했습니다. 이런 쉬운 걸 물어봐도 되나 싶었습니다. 친구들은 다 아는 것 같은데 저만 모르는 것 같았고, 선생님한테 가기도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그냥 공식을 외웠습니다. 왜 그렇게 되는지는 흐릿한 채로요.


    그렇게 넘긴 구멍들이 쌓였습니다. 어느 지점부터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꼬인 건 알겠는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를 모르는 수학. 그게 고등학교 3년 내내 수학과 저 사이에 있던 거리였습니다.


    영화 속 한지우는 강남의 자사고에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들어온 아이였고 수학은 9등급. 지우가 수학이 안 되는 이유는 머리 때문이 아닙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게 보입니다. 설명을 들으면 따라가고 막힌 것들을 짚어주면 뚫립니다. 지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제 고등학교 시절도 겹쳐 보였습니다.


    이학성은 최민식이 연기한 인물로, 세계적인 수준의 수학자지만 북한을 탈출해 신분을 숨긴 채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박동훈 감독이 연출한 2022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초반부는 경비실 작은 책상에서 지우의 풀이를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채워집니다.

     

    내 것이 아닌 답

    이학성이 지우를 가르치는 방식은 낯섭니다. 답을 바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틀린 풀이를 앞에 두고, 어디서 어떻게 틀렸는지를 같이 들여다봅니다. 지우는 처음에 그게 답답합니다. 맞는 답만 알면 되는데, 시험에서 점수만 나오면 되는데.


    저 역시 틀린 문제를 다시 보는 게 귀찮았습니다. 어차피 같은 문제는 안나오니까 해설지의 풀이만 한번 보고 넘어갔습니다. 그렇게 처리한 문제가 쌓일수록 수학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문제 하나를 몰라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모르는지조차 찾기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수능 날 2를 써서 맞은 건 그 구멍들의 결과였습니다. 틀릴 수도 있었습니다. 우연히 맞은 거였습니다. 시험지에 동그라미를 쳤지만 저만 알고 있는 찜찜함. 2를 고른 건 감이었다는 것. 성적표를 쥔 손이 가벼운 것과 마음이 가벼운 건 다른 문제입니다.


    이학성은 그 동그라미로 지우의 풀이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답은 나왔어도 과정이 흔들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처음에 지우는 그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꼼꼼함이 무엇을 바꾸는지 알게 됩니다. 문제를 대하는 지우의 표정과 태도가 점점 달라지는데 저는 그 변화가 이 영화에서 가장 정직하게 느껴졌습니다.

     

    경비실 형광등 아래

    이학성이 경비실 작은 책상에 앉아서 지우의 풀이를 들여다보는 장면이었습니다. 형광등 아래, 조용히, 어디서 막혔는지를 짚어주는 그 자리.


    신분을 숨겨야 했고, 눈에 띄지 않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경비원 자리를 선택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자리가 이학성에게 묘하게 맞아 보입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강단이든 책상이든 차분히 풀이를 들여다볼 수 있으면 되는거죠.


    만약 저런 자리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이런 거 물어봐도 되냐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 쉬운 문제라도 같이 봐주는 사람. 답이 맞아도 과정을 짚어주는 사람.


    그리고 내가 그 시절 모른다고 말하지 못해서 질문을 포기했던 그 습관은 수학에서만 그랬을까…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수능 성적표가 떠올랐습니다. 잘 나왔던 과목들 사이에서 내가 정말 알고 쓴 답은 몇 개였을까. 수능 이후로 수학책을 다시 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주관식 1번에 썼던 숫자 2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맞은 답이었지만, 제 답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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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카운트> 포토

    ※ 참고 자료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공식 작품 정보
      - 씨네21 박동훈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