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를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비슷한 시기에 올린 글인데 조회수가 완전히 다르게 갈립니다.
50에서 멈추는 글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 갑자기 몇 천 명이 읽는 글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글의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잘 쓴 글이 읽히는 거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게 보였습니다. 조회수가 붙기 시작한 글에는 댓글이 달리고 공감이 늘어납니다. 반대로 아무도 안 본 글은 내용이 좋아도 그대로 묻힙니다.
사람들은 좋은 글을 찾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읽고 있는 글은 그냥 함께 읽는 것 같습니다. 묻힌 글이 꼭 더 안 좋은 게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를 보면서 내내 이 생각이 났습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 작품 정보
2023년 6월 3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셀러브리티>는 김철규 감독이 연출하고 김이영 작가가 극본을 맡은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의 12부작 드라마입니다. 박규영, 강민혁, 이청아, 이동건, 전효성 등이 출연하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입니다.
<셀러브리티>는 화장품 방문판매원이던 서아리가 SNS 인플루언서 세계에 들어가 빠르게 유명세를 얻고, 그 뒤에 따라오는 질투와 조작, 폭로에 휘말리는 이야기입니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아리가 갑자기 라이브 방송에 나타나 셀럽들의 비밀과 성공의 ‘치트키’를 폭로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가 어떻게 정상에 올랐고 왜 추락했는지를 거슬러 보여줍니다.
사람은 사람을 따라 좋아한다
드라마는 표면적으로 SNS 세계의 욕망과 권력을 다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이 드라마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장면들을 따라가면 패턴이 보입니다.
브랜드가 협찬을 제안하는 건 아리의 콘텐츠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팔로워가 이미 많기 때문입니다. 방송 출연 제안도 댓글이 쌓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리를 바라보는 주변의 기준이 바뀐 겁니다. 누군가 먼저 좋아하고 숫자가 올라가면 그 다음 사람도 안심하고 좋아합니다.
가빈회가 아리를 몰락시키는 방식도 같은 원리입니다. 아리의 실제 문제를 폭로하는 게 먼저가 아닙니다. 아리가 문제 있다는 분위기를 먼저 만듭니다. 의심과 비난도 다른 사람의 반응을 따라 번집니다.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메커니즘이 똑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SNS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저한테는 집단심리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제작진이 드라마 곳곳에 실제 인스타그램·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을 특별출연시킨 것도 재미있습니다.
허구의 셀럽 세계를 만들면서 그 세계에서 실제로 유명한 사람들을 집어넣었습니다. 화면에 등장한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몰라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하고 한 번 더 보게 됩니다.
유명해서 주목받는 것인지, 계속 주목받아서 유명해지는 것인지 경계가 흐려집니다.
드라마가 이야기하는 유명세의 작동 방식을 시청자도 화면 앞에서 그대로 경험하게 되는 셈입니다.
873만이라는 숫자
유튜브에서 조회수 873만짜리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누른 이유는 영상이 궁금해서가 아니었습니다. 873만이라는 숫자가 궁금했습니다. 이게 그렇게 좋은 영상인가 싶어서요.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 영상을 좋다고 느끼는 건지, 873만 명이 봤다는 사실 때문에 좋다고 느끼는 건지. 그 경계가 생각보다 흐릿했습니다.
<셀러브리티> 의 팔로워 숫자도 그렇게 작동합니다.
130만이라는 숫자 자체가 콘텐츠의 품질처럼 됩니다. 사람들은 아리의 게시물을 보고 판단하기보다 130만이 이미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고 판단합니다. 내용보다 숫자가 먼저 신뢰를 만드는 거죠.
이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모르는 것 앞에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참고하는 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정보가 없을 때 가장 빠른 판단 기준은 남들이 이미 한 선택이니까요.
문제는 그 참고가 판단을 완전히 대신해버리는 순간입니다.
<셀러브리티>는 그게 얼마나 쉬운지를 보여줍니다.
구경꾼이 참여자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진짜 무서운 건 몇몇 악역이 아닙니다.
가빈회가 영향력을 유지하고 아리를 흔들 수 있는 건 구경하는 팔로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를 끌어올린 관심은 방향만 바꾸면 똑같은 속도로 아리를 바닥까지 밀어냅니다.
드라마는 인플루언서 세계를 비판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세계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경꾼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구경꾼이 제 블로그 조회수를 올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873만짜리 영상을 클릭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도, 특별히 흔들린 것도 아닙니다. 그냥 다른 사람이 많이 본다기에 눌렀을 뿐인 겁니다. 그런데 그 클릭이 쌓여서 숫자가 되고, 그 숫자가 다음 사람의 판단을 만듭니다.
<셀러브리티>는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을 따라 좋아하고 또 미워하기도 한다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블로그 대시보드를 열었습니다.
조회수가 높은 글에 먼저 손이 갔습니다.
더 잘 쓴 글인지 확인하려던 걸까요. 아니면 이미 많은 사람이 읽었다는 사실이 저를 움직인 걸까요.
저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한 사람의 진짜 모습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린 평가가 먼저 힘을 갖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함께 읽어보세요
※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네이버 영화 <관상> 포토
※ 참고 자료: 넷플릭스 드라마 <셀러브리티> 공식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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