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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주의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야간 현장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이 몇 번이고 찾아오셨습니다. 엄청 말리셨어요. 너 어쩌려고 그러냐고… 큰일난다고. 그만큼 걱정이 크셨던 거겠죠.


    그래도 저는 결국 제 결심대로 그만뒀고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지쳐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버텼었는데… 지금은 마음도 편해지고 표정도 밝아졌지요.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저를 걱정하셨던 건 살면서 직접 겪어왔던 불안을 제가 똑같이 겪을까 봐서였을 겁니다. 본인들에게 안전해 보이는 길을 저에게도 권하신 거죠. 그 마음이 잘못돼진 않았습니다. 부모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다만 그 ‘안전한’ 길이라는 게 제가 느끼는 ‘안전함’과는 달랐다는 걸 모르셨던 겁니다.


    픽사의 2023년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보고 나서 오래 생각한 건 그것이었습니다.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포스터
    ▲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공식 포스터

     

    버니가 꿈꾼 것

    대부분의 관객은 이 영화를 앰버와 웨이드의 이야기로 볼겁니다. 불과 물이 만나는 로맨스, 또는 이민자 2세의 정체성 이야기로요. 당연합니다. 저도 그렇게 봤으니까요. 피터 손 감독의 엘리멘탈 비하인드까지 찾아볼 정도로 빠져있었죠. 다만 저는 좀 다른 시각으로도 보였습니다. 한참 동안 앰버의 아버지 버니 생각을 했거든요.


    버니는 고향 파이어랜드를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한 이민 1세대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가게 하나를 일으켰고, 그 가게를 딸에게 물려주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영화 초반의 버니는 전형적인 이민자 아버지처럼 보입니다. 고지식하고 딸에게 기대가 크고 가게 일에 엄격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버니가 보였습니다. 앰버가 가게에서 실수할 때마다 버니의 표정이 굳는데요. 처음에는 딸에게 실망하고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보다보니 그 안에 있는 아빠의 불안도 함께 느껴졌습니다. 평생 일군 가게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그곳을 이어받을 딸이 자신처럼 힘든 시간을 겪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섞인 마음이 보였습니다.


    버니가 어떤 도시에서 가게를 일으켰는지 생각해보면 그 압박이 조금 달리 보입니다. 불 원소가 살기 불편하게 만들어진 도시, 수로와 물을 중심으로 길바닥도 미끄러운 곳. 그런 공간에서 버니가 만들어낸 가게는 단순한 식료품점이 아니었을 겁니다. 낯선 곳에서 자신과 가족이 머물 자리를 직접 만드는 방식이었겠죠. 보통 힘든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에게 가게는 생계이면서 고향이었고, 자신이 이 도시에서 버텨냈다는 증명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딸에게 넘기고 싶었던 마음에는 재산을 물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겁니다. 자신이 어렵게 만든 ‘안전’이란 걸 딸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것이겠죠.
    문제는 부모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 자식에게 필요한 것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내 꿈은 이 가게가 아니라 언제나 너였단다

    영화 후반, 앰버는 울면서 가게를 물려받고 싶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버니가 많이 실망할 줄 알았는데 제 예상과 많이 달랐습니다. 엠버를 조용히 안아주면서 가게가 자신의 꿈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꿈은 처음부터 앰버였다고요.


    많은 분들이 이 장면을 앰버의 해방으로 볼겁니다. 당연히 맞습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버니 자신의 고백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딸에게 안전한 길을 만들어주려 했는데, 그 길이 딸에게는 맞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거죠. 자신이 평생 옳다고 믿어온 방식을 내려놓는 순간인 겁니다.


    그건 절대 쉽지 않습니다. 버니의 인생에서 그 가게는 생계 수단 그 이상이었으니까요.


    버니는 앰버가 가게를 물려받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부모의 삶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으면서도 그 삶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도요.


    이 장면을 보면서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몇 번씩 찾아오셔서 말리시던 그 표정. 버니가 앰버를 바라볼 때의 표정과 겹쳤습니다.

     

    안전한 길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부모님이 걱정하셨던 건 맞습니다. 다만 부모님이 겪으신 불안과 제가 겪을 불안은 달랐습니다. 사무직으로 계속 살았다면 저는 더 빨리 망가졌을 겁니다. 야간 현장직이 더 고되어 보였겠지만, 저한테는 오히려 그쪽이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건 그 선택이 성공하리라 확신해주는 일만은 아닐 겁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처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자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겠죠.


    버니도 그것을 결국 이해했습니다. 딸의 안전한 길이 자기 것과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이해한 다음에는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딸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도록 뒤에서 지켜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무거운 선택을 한 사람은 버니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버니는 파이어랜드를 떠나던 날, 아버지에게 큰 절을 올리지만 아버지는 받아주지 않습니다. 떠나는 아들의 앞길을 축복하지 않은 겁니다. 그리고 버니는 그 거절을 안고 평생을 살아온 셈입니다.


    영화 마지막에 앰버가 버니에게 올리는 절은 그래서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닙니다. 버니가 평생 받지 못했던 것을 딸이 돌려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버니는 그 절을 받아줍니다. 자기 아버지가 자신에게 하지 못했던 것을, 딸에게는 해주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버니가 참 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

     

    <엘리멘탈>은 불과 물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한테는 버니가 파이어랜드를 떠나온 날부터 가게 간판을 내리는 날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부모님도 지금은 아실 겁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 저한테 맞는 길이었다는 것을요. 굳이 그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가끔 전화할 때 목소리가 예전과 다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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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 이미지 출처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참고 자료: 영화 <엘리멘탈> 공식 작품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