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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주의


    어릴 때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저는 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말은 들리는데 뜻은 모르는 사람. 갑자기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


    부모님이 두분 다 강원도 강릉 출신이신데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친할머니가 특히 강릉 사투리를 심하게 쓰셨었는데 저는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고녜이(고양이), 감재(감자) 지악(저녁)처럼 발음이 비슷한 건 문맥으로 대충 알아들었지만, 고벵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한참 동안 무슨 동물 이름인 줄 알았습니다. 무릎이란 뜻이었는데 말이죠.


    명절 밤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늦은 시간까지 뛰어다니며 잘 생각을 하지 않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낯쎄고 둔눠!”


    저는 또 어리둥절한 얼굴로 엄마 아빠를 쳐다봤습니다. 세수하고 누우라는 뜻이었습니다. 할머니에게는 잠자기 전 당연한 한마디가 제 귀에는 무슨 주문처럼 들렸습니다.


    할머니가 뭐라고 하실 때마다 통역은 엄마 아빠 몫이었습니다. 두 분은 꼭 그 타이밍에 깔깔 웃으셨습니다. 웬만한 코미디 프로보다도 더 웃기다고 하시면서요. 그러고는 뜻을 알려주셨죠. 저는 답답했는데 부모님은 재밌으셨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두 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할머니 말 뜻도 알고, 제 표정도 알겠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 명절 풍경이 가끔 떠오릅니다. 고벵이, 불기, 감재, 미시리, 상구도, 그리고 “낯쎄고 둔눠!” 이제 그 말들을 쓰는 사람은 우리 집에 없습니다.

     

    영화 말모이 포스터
    ▲ 영화 <말모이> 공식 포스터

     

    판수에게 없었던 것은 글자였다

    2019년 개봉한 엄유나 감독의 영화 <말모이>는 194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우리말 사용이 억압받던 시대에 조선어 사전을 만들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유해진이 연기하는 김판수는 극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까막눈 전과자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말을 모으는 일에 뛰어드는 이 설정이 처음엔 어색해 보여도, 영화를 보다 보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판수는 학자가 아닙니다. 문법도 모르고, 어원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의 말을 꺼내놓는 공청회에서, 판수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판수는 모든 사투리를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신 그 말을 가진 사람들을 알고,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도록 움직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말을 글 이전의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소리로, 억양으로, 그 말이 쓰이던 맥락으로. 조선어학회의 학자들이 표기법을 논하는 동안, 판수는 말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살아 있는지 압니다.


    사전을 만든다는 건 결국 그런 겁니다. 누군가의 입에서만 살아 있던 말을 종이 위에 올려두는 일. 그래야 그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말이 남습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할머니의 강릉사투리 생각을 했습니다. 제 어릴 적 일상에는 고벵이 같은 말을 적어둘 자리가 없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 이어지지 못한 말

    영화에서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전국의 방언을 수집하려고 애를 씁니다. 경상도 말, 전라도 말, 함경도 말. 지역마다 다르게 쓰이던 낱말을 한자리에 모아 뜻과 쓰임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표준말을 정하는 작업입니다. 실제 사전 원고가 만들어지는 데에도 전국 각지에서 말을 모아 보내온 이름 없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사투리가 뭔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준이 된 말은 학교와 방송에서 계속 반복되지만, 표준이 되지 않은 말은 지역을 벗어나는 순간 뜻을 설명해야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닌데도 듣는 사람이 모르면, 말한 사람이 고쳐야 하는 표현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할머니 사투리가 그랬습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는데 저한테는 거의 외국어였습니다. 배운 적도 없고 가르쳐줄 기회가 명절 며칠뿐이었으니까요.


    판수가 글을 배우는 장면이 영화 중반에 나옵니다.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쓰는 장면. 별게 아닌데 목이 멥니다. 뒤늦게 무언가를 손에 쥔 사람의 벅찬 얼굴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쓰는 사람. 평생 들어왔던 것인데 지금까지 쥐지 못했던 것.
    저도 고벵이가 무릎이라는 걸 처음 알았던 날 잠깐 그 비슷한 얼굴을 했을지 모르겠네요.

     

    몇 쪽 되지 않는 우리 집 말모이

    일제는 조선어 교육과 사용을 억압하고, 말을 기록하려던 사람들까지 탄압했습니다. 영화는 그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이 사라지는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강제로 빼앗기는 것 말고, 그냥 이어지지 않아서 사라지는 것들. 가르쳐줄 사람과 배울 사람이 명절에만 며칠 만나다가 끝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할머니는 저한테 강릉 말을 가르쳐주려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알아들으려고 애쓰다가 포기하고, 포기하면 엄마한테 물어보는 식으로 명절이 지나갔습니다.


    지금 제가 아는 할머니 사투리는 고벵이, 불기, 감재, 미시리, 상구도, 지악, 고녜이, 낯쎄다, 둔눠까지 열개 남짓입니다. 우리 집에서 불기는 상추였고, 상구도는 아직도, 미시리는 바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도 엄마 아빠가 웃으면서 설명해주셨기 때문에 기억하는 겁니다. 저한테 있는 사투리 사전은 그게 전부입니다. 열개짜리…


    생각해보면 명절마다 엄마 아빠가 해준 일도 작은 말모이였습니다. 할머니의 말을 제 쪽으로 건네주고, 그 말을 못 알아들은 제 표정을 다시 할머니 쪽으로 전해주는 일이었으니까요.


    판수도 두 세계 사이에 서 있던 사람입니다. 학자들이 말을 기록하고 사전을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판수는 거리의 사람들을 모을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전이 왜 필요한지를 먼저 알고 있던 사람은 류정환입니다. 그러나 말이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입과 생활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람은 판수입니다. 글을 모르는 판수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어야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판수에게 없었던 것은 글자였지, 말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말모이를 만든 사람들이 말이 사라지면 그 말을 쓰던 사람의 흔적도 함께 희미해진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판수가 각 지역의 말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낱말 하나의 뜻을 두고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보태는 장면에서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잊히기 전에, 사라지기 전에.


    저는 지금도 고벵이를 들으면 할머니 얼굴이 생각납니다. 뜻도 모르면서 따라 중얼거리던 제 모습이랑, 그게 우스워서 깔깔대던 엄마 아빠 얼굴도요. 할머니는 그때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냥 웃고 계셨습니다. 손녀가 이 말도 모른다는 게 귀엽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셨겠지요.


    그때 뜻을 물어본 말들만 남았습니다. 묻지 않았던 말들은 이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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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말모이>, <천문: 하늘에 묻다> 포토

    ※ 참고자료: 영화 <말모이> 공식 작품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