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레슬러를 꿈꾸는 청년과 도망 중인 남자의 여행을 그린 영화. <피넛 버터 팔콘> 리뷰입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영화 <피넛 버터 팔콘> 기본 정보와 줄거리
기본 정보
- 개봉: 2021. 04. 07.
- 장르: 드라마, 어드벤처, 코미디
- 감독·각본: 타일러 닐슨, 마이크 슈왈츠
- 출연: 잭 고츠아전, 샤이아 라보프, 다코타 존슨, 토머스 헤이든 처치, 존 호크스, 브루스 던, 존 번설
- 러닝타임: 97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수상·선정: 제45회 도빌 아메리칸 영화제 관객상, 2019 SXSW 내러티브 스포트라이트 관객상, 2019 전미비평가위원회 독립영화 톱10
〈피넛 버터 팔콘〉은 타일러 닐슨과 마이크 슈왈츠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감독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캠프에서 만난 배우 잭 고츠아전의 꿈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고츠아전이 직접 주인공 잭을 연기했습니다.
줄거리
다운증후군이 있는 청년 잭은 프로레슬러가 되어 우상인 솔트 워터 레드넥에게 훈련받겠다는 꿈을 품고 보호시설을 탈출합니다. 가진 것 없이 길을 나선 그는 불법 조업과 형의 죽음에 얽힌 상처를 안고 도망치던 어부 타일러의 배에 숨어듭니다.
처음에는 잭을 귀찮아하던 타일러는 그가 레슬링 학교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동행하기로 합니다. 두 사람은 걸어서 길을 건너고 직접 만든 뗏목을 타며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잭을 시설로 데려가기 위해 뒤따라온 보호사 엘리노어까지 합류하면서, 세 사람의 여정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안전한 삶과 자신이 선택한 삶 사이에서 방향을 찾아가는 모험이 됩니다.
2. 영화 <피넛 버터 팔콘> 관람 포인트
- 실제 배우 잭 고츠아전의 꿈과 성격에서 출발한 주인공과 제작 과정
- 자동차보다 걷기와 뗏목을 택해 미국 남부의 강과 습지를 천천히 통과하는 여정
- 보호시설의 철창과 레슬링 링의 로프로 대비되는 두 개의 경계
그린팝콘 픽|영화 속의 잭과 닮은 현실의 잭
〈피넛 버터 팔콘〉에서 잭이 길을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은 손으로 하나씩 만들어집니다. 타일러와 나무를 엮어 뗏목을 만들고, 모닥불 앞에서는 나뭇가지로 날개를 달고 얼굴에 땅콩버터를 발라 ‘피넛 버터 팔콘’이라는 레슬러를 완성합니다. 번듯한 장비는 아니지만 잭이 목적지로 향하고 링에 설 수 있게 해주는 것들입니다.
영화가 탄생한 과정도 이 모습과 닮았습니다. 배우 잭 고츠아전은 자신이 맡을 만한 배역이 많지 않다는 말을 듣자, 타일러 닐슨과 마이크 슈왈츠 감독에게 자신이 출연할 영화를 함께 만들자고 먼저 제안했습니다. 두 감독은 잭을 중심으로 각본을 쓰고, 그의 경험과 말투가 인물 안에 자연스럽게 담기도록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 잭이 뗏목과 레슬러의 이름을 직접 만들었듯, 현실의 잭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말 한마디로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의 출발점을 만들어냈습니다.
3. 관람평|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
회사 일이 한창 바쁠 때였습니다. 집에 가면 쓰러져 자고 일어나면 옷만 겨우 갈아입고 출근하는 패턴이 몇 달째 이어졌습니다. 그때 옆자리 대리님과 거의 붙어서 일했습니다. 같이 야근하고, 당연히 밥도 같이 먹고, 일이 풀리면 같이 좋아하고 막히면 같이 막막해했습니다. 성격도 잘 맞아서 일 말고 개인적으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어느 날은 일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지금 내 옆에 있는 대리님이 가족보다 더 가족 같다...'
<피넛버터팔콘>을 보면서 그 시절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영화 속 잭과 타일러의 관계가 그랬거든요.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가까워진 게 아니라, 같이 걷고 밥 먹고 위험을 피하고 밤을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로한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돼 있는 그 관계요.
이 영화가 만들어진 스토리 자체가 영화다
이 영화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잭을 연기한 배우 잭 고츠아전은 실제로 다운증후군이 있는 배우입니다.
타일러 닐슨과 마이크 슈왈츠 감독은 사람들이 함께 예술 작품을 만드는 캠프에서 잭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단편영화를 촬영하던 잭은 두 감독에게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했습니다.
당시 마이크 슈왈츠는 다운증후군 배우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많지 않다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잭은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먼저 제안합니다. 두 사람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고, 자신이 주연을 맡으면 된다고요.
각본을 쓸 때도 잭 자신에서 출발했습니다. 잭이 레슬링을 좋아하니까 마지막 장면을 레슬링으로, 잭이 수영을 잘하니까 캐릭터는 수영을 못하는 것으로 설정해 성장의 여지를 만들었습니다. 현실의 잭이 배우로서 자신의 꿈을 향해 걷는 이야기와, 영화 속 잭이 레슬러를 향해 걷는 이야기가 겹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잭이 화면에 있는 장면들은 캐릭터를 억지로 꾸며낸다는 느낌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거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감독들이 잭에게 장면마다 창의적 결정권을 줬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읽었는데, 그게 화면에서 느껴졌던 겁니다.
일부러 노력하지 않았는데 가까워진 관계
잭과 타일러는 처음에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닙니다. 타일러는 형을 잃은 죄책감과 방황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잭은 보호시설에서 탈출해 프로 레슬러가 되겠다는 꿈 하나만 들고 있는 청년입니다. 타일러는 처음에 잭을 귀찮아합니다. 책임지기 싫어하고 떠넘기려 합니다. 그러다 둘이 함께 걷고, 강을 건너고, 밥을 먹고, 밤을 보내는 시간들이 그냥 쌓여서 가까워집니다. 다른거 없이 그게 다입니다.
제 옆자리 대리님과의 관계도 그랬습니다. 가까워지려고 노력한 적이 없었습니다. 일이 그냥 우리를 붙여놓았고, 붙어 있다 보니 어느 순간 그렇게 됐습니다. 인위적인 것 없이 그냥 시간이 만든 관계. 이 영화가 그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타일러가 잭을 도와줘야 할 사람으로 바라보다가 점점 나란히 걷는 동료로 바라보게 되는 변화가 좋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순간이 어떤 모습인지, 영화는 그 변화를 긴 설명보다 함께 물에 뛰어들고, 훈련하고, 잭의 선택을 기다려주는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안 될 이유부터 찾는 저와 일단 가는 잭
저는 사실 영화 제목부터 조금 낯설었습니다. 피넛버터는 알겠는데, 뒤에 붙은 ‘팔콘’은 무슨 뜻일까 싶었죠. 그래서 틀어본 것도 있습니다. 팔콘(Falcon)은 영어로 ‘매’라는 뜻이고, 영화에서는 잭이 직접 고른 레슬러 이름입니다.
모닥불 앞에서 타일러는 잭에게 새로운 이름과 또 다른 자아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잭이 “팔콘은 할 수 있어!”라고 외치자 타일러는 나뭇가지로 날개를 만들어주고 숯으로 얼굴에 분장을 해줍니다. 여기에 잭이 땅콩버터까지 얼굴에 바르면서 ‘피넛 버터 팔콘’이라는 엉뚱한 이름이 탄생합니다.
이름은 장난처럼 만들어졌지만 그 순간부터 잭은 자신을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합니다. 평소의 잭이라면 겁낼 일도 피넛 버터 팔콘은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타일러가 잭에게 가르쳐준 것은 레슬링 기술보다 먼저, 스스로를 믿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름이었던 셈입니다.
잭이 찾아간 솔트 워터 레드넥은 이미 레슬링을 그만두고 학교도 닫은 뒤였습니다. 처음에는 잭을 거절하지만 결국 다시 링으로 돌아와 그를 훈련시킵니다. 잭은 마지막 경기에서 솔트 워터 레드넥조차 불가능하다고 했던 기술을 끝내 해냅니다.
잭을 보면서 뭔가 부러웠습니다. 잭은 세상이 정해놓은 한계를 그냥 믿지 않습니다. 보호시설 직원들은 위험하니까 안 되고, 어려우니까 안 된다고 합니다. 잭은 그러든말든 그냥 하고 싶으면 합니다.
저는 이 단순함이 참 어렵습니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너무 많은 이유를 먼저 만들게 되거든요. 실패할까 봐, 늦었을까 봐, 그 에너지를 다른 데 쓰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요. 그런데 잭한테는 그런 계산이 없습니다.
영화는 잭의 망설임 없는 성격을 다운증후군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잭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꿈을 이루려고 직접 길을 나선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그 대리님이 생각났습니다. 오래전에 다른 팀으로 이동하셔서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띄엄띄엄 해왔는데,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냥 밥 한번 먹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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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피넛버터팔콘>, <리바운드> 포토
※ 참고 자료
- 영화 <피넛 버터 팔콘> 공식 작품 정보
- Outtake Magazine – 타일러 닐슨·마이크 슈왈츠 감독 인터뷰
- Global Down Syndrome Foundation – 영화 제작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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