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쌍둥이 자매가 캠프에서 만나면서 시작되는 영화 <페어런트 트랩> 리뷰입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비디오로 <페어런트 트랩>을 봤었습니다. 그때 보고 나서 재밌는 상상을 해봤었는데요. 혹시 나도 모르는 쌍둥이가 어딘가에 살고 있지 않을까. 나와 똑같이 생겼는데 전혀 다른 집에서 자란 아이를 우연히 만나면 얼마나 신기할까 이런 생각들 말이죠.
그런데 어른이 되어 다시 보다가는 정반대의 상상을 하게 됐습니다.
만약 부모님이 저와 동생을 한 명씩 데려가서 서로의 존재도 알려주지 않은 채 키웠다면 어땠을까.
네 살 터울인 저와 동생은 어릴 때 엄청나게 싸웠습니다. 과자가 여러 개 있는데도 굳이 같은 것을 서로 먹겠다고 우기다가 과자를 바닥에 전부 쏟은 적도 있습니다. 결국 엄마에게 된통 혼나고 과자는 둘 다 먹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왜 그렇게까지 싸웠는지 이해도 안 되지만, 그 바보 같은 기억도 동생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본 영화 <페어런트 트랩>은 예전처럼 마냥 신나는 쌍둥이 소동극으로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얼굴은 같아도 자란 곳은 달랐다
영화는 태어나자마자 헤어진 쌍둥이 할리와 애니가 여름 캠프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할리는 아빠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애니는 엄마와 영국 런던에서 자랐습니다.
두 사람은 펜싱 경기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합니다. 마스크를 벗은 순간 자기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앞에 서 있지만, 처음부터 반가워하지는 않습니다. 서로를 못마땅해하고 장난으로 맞붙다가 격리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게 된 뒤에야 자신들이 쌍둥이라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포커를 치며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부터 부모의 사진을 맞춰보는 순간까지, 린지 로한은 정말 두 사람이 연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할리는 몸짓과 말투가 거침없고, 애니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조심스럽습니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린지 로한이 두 아이의 성격뿐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흔적까지 구분해 냈다는 것이 지금 봐도 놀랍습니다.
두 아이를 보면서 저에게도 엄마와 함께 살며 몸에 밴 습관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저희 집 화장실 세면대에는 물을 받는 작은 통이 있습니다. 손을 씻거나 세수할 때 수도꼭지를 계속 틀어놓지 않고 그 통에 물을 받아서 씁니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친구 집에서 손을 씻을 때도 그랬습니다. 친구가 손에 비누칠을 하는 동안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는 모습을 보는데 물부터 신경 쓰였습니다. 엄마가 옆에서 잔소리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엄마의 방식이 제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리와 애니도 그랬을 것입니다. 얼굴은 똑같지만 한 아이에게는 아빠와 지낸 시간이, 다른 아이에게는 엄마와 지낸 시간이 말투와 행동에 남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린지 로한의 연기를 보는 재미인 동시에, 누구와 함께 자랐느냐가 한 사람을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 지도 보여줍니다.
함께 싸울 기회조차 없었던 11년
할리와 애니는 서로의 집으로 바꿔 들어갑니다. 할리는 런던으로 가서 처음으로 엄마를 만나고, 애니는 캘리포니아에서 아빠와 생활합니다. 쌍둥이의 작전은 유쾌하고, 서로 몰래 말투와 습관을 가르쳐주는 과정도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설정은 바꿔치기가 아닙니다. 부모가 갓 태어난 두 아이를 한 명씩 나눠 데려간 뒤, 자매의 존재까지 숨겼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부모를 다시 만나게 하려는 쌍둥이의 작전만 응원했습니다. 지금은 두 아이가 함께 보내지 못한 시간이 먼저 보입니다.
저와 동생이 과자를 두고 싸우지 않았다면 엄마에게 혼날 일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같이 혼나고 나중에 웃을 수 있는 기억도 남지 않았겠지요. 할리와 애니에게는 그런 사소한 기억이 11년 동안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 싸우고, 편을 들고, 같은 일로 혼나고, 둘만 아는 가족 이야기를 만들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부모가 다시 사랑하게 된다고 해서 그 시간이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가족 코미디의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이 문제를 깊게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이 작품의 한계라기보다는 동화를 완성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 어려운 설정이 됐습니다.
그래도 이 동화를 다시 보게 되는 이유
그렇다고 <페어런트 트랩>의 매력이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밝고 가벼운 장면 아래에 가족이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는 걸 알고 보니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호텔에서 닉과 엘리자베스가 다시 만나는 장면, 두 아이가 부모의 첫 만남을 재현하려고 요트 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한 장면에는 낸시 마이어스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오래전 헤어진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지난 일을 떠올리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들이 빼앗긴 가족의 모습을 직접 만들어냅니다.
닉과 엘리자베스의 재회가 설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두 사람만의 오래된 사랑이 다시 시작되는 장면이면서, 할리와 애니가 처음으로 부모와 한자리에 앉는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의 저는 나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에 빠졌었지만 지금은 이미 곁에 있는 동생과 함께 자란 시간을 생각합니다.
과자를 바닥에 쏟고 둘 다 먹지 못했던 날도 그 시간 안에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도 아마 똑같이 엄청 싸우겠지요. 그래도 동생 없이 혼자 과자를 먹는 어린 시절과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영화 <페어런트 트랩>에 대하여
- 개봉: 1998. 07. 29.
- 장르: 가족, 코미디, 로맨스
- 감독: 낸시 마이어스
- 각본: 데이비드 스위프트, 낸시 마이어스, 찰스 샤이어
- 원작: 에리히 케스트너의 소설 《두 로테》
- 출연: 린제이 로한, 데니스 퀘이드, 나타샤 리처드슨, 일레인 헨드릭스, 리사 앤 월터, 사이먼 쿤즈
- 러닝타임: 128분
〈페어런트 트랩〉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소설 《두 로테》와 디즈니의 1961년 동명 영화를 새롭게 각색한 가족 코미디입니다. 낸시 마이어스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이자, 린제이 로한이 처음 주연을 맡은 장편영화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린제이 로한은 미국에서 자란 할리 파커와 영국에서 자란 애니 제임스를 함께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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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페어런트 트랩>, <청설> 포토
※ 참고 자료: 영화 <페어런트 트랩> 공식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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