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요즘 우체국에 다닙니다. 70대 초반이고,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하루 세 시간씩 소포 부치러 오신 분들 안내하고 도와드리는 일을 하십니다.
평생 주부로 사셨고 우체국 나가시기 전까지는 집에서 앱테크로 하루 몇백 원씩 모으는 것만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좀 짠했습니다. 엄마가 돈을 버셔야 할 이유는 딱히 없었는데, 그냥 뭔가 스스로 해보고 싶으셨던 거겠지 싶어서요.
엄마는 우체국에 나가시면서 달라졌습니다. 월급도 생겼고, 직원분들과 친해져서 같이 식사도 하십니다. 전화 목소리도 달라졌습니다. 사회생활 해보니까 이게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는지 몰랐다고, 진작 이렇게 해볼걸 하셨습니다. 엄마의 하이톤 목소리에 제 기분도 덩달아 업 되었지요.
신기한 일도 생겼습니다. 엄마가 도와드린 분들이 하나씩 뭘 들고 오기 시작한 겁니다.
딸한테 옥수수 소포 부치러 왔다가 거기서 몇 개 빼서 엄마한테 주고 가는 분, 오다가 시장 들러서 호떡이랑 붕어빵 엄마 것까지 샀다며 봉지 내미는 분, 떡을 싸오는 분. 엄마는 그걸 받아서 우체국 직원들이랑 나눠 드신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전화로 들으면서 저는 별생각 없이 "어, 어머 귀엽다" 하고 웃었었는데 <인턴>을 보면서 그 장면들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증명을 서두르지 않는 사람
벤 휘태커는 70대 노인입니다. 아내를 잃고, 오래 다니던 회사도 없어지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스타트업 인턴 공고를 보고 지원합니다.
지원하면서부터 낯섭니다. 종이 이력서 대신 자신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나 비메오에 올려야 합니다. 평생 종이와 전화로 일해온 사람이지만 영상 찍는 방법을 배우고 카메라 앞에 앉습니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정장이나 말투까지 바꾸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방식은 배우되, 자신이 살아온 모습까지 지우지는 않습니다. 입사 후에도 비슷합니다. 처음 며칠은 줄스에게 제대로 된 일조차 받지 못합니다.
저라면 상당히 불안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새 일을 시작하면 첫 주 안에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고, 조용히 앉아 있으면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처음 벤을 보면서 저 상황이라면 저는 분명 사흘 안에 그만뒀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벤은 증명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냥 주변을 살피다가 필요한 일이 보이면 합니다. 아무도 치우지 않던 책상을 정리하고, 동료가 고민을 털어 놓으면 들어주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젊은 직원들에게 배웁니다.
영화를 보면서 엄마의 앱테크가 떠올랐습니다. 하루 몇백 원을 모으는 게 목적이었다기보다, 뭔가 내 손으로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겠다 싶었거든요. 그 마음이 우체국이라는 새로운 자리로 이어진 것이고요.
옆에 그냥 앉아있는 것
스타트업 CEO 줄스는 회사를 빠르게 키운 사람입니다. 유능하고 빠르고 완벽하려 합니다. 그래서 벤 같은 속도를 처음엔 불편해합니다.
하지만 벤은 먼저 해결책부터 들이밀지 않습니다. 상대를 보고 기다립니다.
늦은 밤 사무실에서도 그렇습니다. 줄스는 멀리 남아 일하고 있는 벤을 보고 피자와 맥주를 들고 찾아옵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일을 떠나 음악과 가족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집니다.
엄마를 떠올린 것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엄마가 우체국 오시는 분들한테 특별히 뭔가를 해드리는 건 아닐 겁니다. 소포 부치는 방법 안내하고, 택배 용지 작성 도와드리고, 그냥 거기 있는 거겠지요.
근데 그분들이 다음번에 또 오면서 호떡을 사 들고 옵니다. 붕어빵을 사서 나눠주고, 딸한테 보내려던 옥수수를 몇 개 덜어 줍니다.
엄마가 거기서 사람들에게 그냥 반갑게, 편하게 대해주시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낯선 사람한테 매번 반갑게 맞는 일도 에너지가 드니까요.
근데 엄마는 그걸 에너지 쓰는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사람이 오면 반가운 거겠지요.
저는 벤과 엄마를 보면서 사람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방법이 반드시 대단한 능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흔에 다시 인턴이 된다는 것
영화 제목이 <인턴>인 게 저는 재밌습니다. 어떤 공간이든 처음 들어가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내 자리를 찾습니다. 그 과정에 2~30대나 젊음이라는 제한은 없습니다.
벤은 70대에 그 과정을 다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줄스조차 그에게 맡길 일을 몰라씨만, 어느 순간 그는 회사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중 하나가 됩니다.
엄마도 처음엔 그냥 출근하셨겠지요. 안내하고 도와드리고, 그러다 세 시간이 지나면 퇴근하는 것. 그게 다였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옥수수가 왔고, 호떡이 왔고, 떡이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단한 일인 것 같은데 엄마는 별 대수롭지 않아 하십니다. 벤도 그랬을 겁니다. 그냥 내일도 출근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겠지요.
엄마가 신이 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진작 해볼걸 그랬네."
사람이 언제 어디서 신나는 일을 만날지는 정말 모릅니다. 저희 엄마처럼 그게 일흔이 넘어서인 경우도 있습니다.
<인턴>은 어떤 영화일까?
2015년 9월 24일 국내 개봉한 <인턴>은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121분의 코미디·드라마 장르의 영화입니다. 로버트 드니로가 일흔 살의 벤 휘태커를, 앤 해서웨이가 패션 스타트업 CEO 줄스 오스틴을 연기했으며, 국내 관람등급은 12세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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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현실 코미디입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인턴>, <굿 포츈> 포토
※ 참고 자료: 영화 <인턴> 공식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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