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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지금 제 삶을 백만장자의 삶과 바꿔주겠다고 하면 저는 거절할 자신이 없습니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너무 많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굿 포츈 포스터를 보고 그냥 바로 틀었습니다.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가볍게 웃다가 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웃음기가 빠진 채로 제 삶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뻔한 이야기라고 할 거고, 누군가는 저처럼 한동안 여운에 잠겨 있을 겁니다. 저는 확실하게 호 쪽이었습니다.


    <굿 포츈>은 2026년 1월에 국내 개봉한 판타지 코미디 영화로, 아지즈 안사리가 감독과 각본과 주연을 전부 맡았습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천사로 나온다는 것만으로 화제가 됐던 작품인데, 존 윅의 그 얼굴로 어수룩한 하급 천사를 연기합니다. 이 조합이 주는 웃음이 상당합니다.

     

    영화 굿 포츈
    영화 <굿 포츈> 포스터

     

    초짜 천사가 저지른 오지랖

    이야기의 출발은 단순합니다.

     

    운전 중 휴대폰 사고나 막는 게 주 업무인 하급 천사 가브리엘이 여러 일을 전전하면서도 차에서 잠을 자야 하는 아지를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겠다며 아지와 백만장자 제프의 삶을 통째로 바꿔버린 겁니다.


    천사의 계획대로라면 아지는 부자의 삶을 살아보고 나서 원래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지는 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웃음이 터졌고, 동시에 뜨끔했습니다. 그럴 만하니까요.

     

    손목이 아프도록 일해도 통장이 비는 삶과, 아침에 눈 뜨면 수영장이 보이는 삶. 저라도 안 돌아간다고 버텼을 겁니다. 저는 이 뻔뻔하고 현실적인 아지의 반응이 웃기면서도 뭔가 응원하게 되더라구요.


    일을 벌인 가브리엘은 결국 날개를 잃고 인간이 됩니다. 인간이 된 천사가 제프와 함께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장면들이 특히 웃겼습니다. 천사가 최저시급의 세계를 몸으로 배우는 겁니다.

     

    키아누 리브스는 억지로 웃기려 하지 않습니다. 존 윅이라면 총 한 자루로 해결했을 얼굴로 햄버거와 담배, 월급명세서 앞에서 진지하게 흔들립니다. 그 무심한 표정 때문에 오히려 더 웃겼습니다.

     

    부자의 삶과 바꾸겠냐고 묻는다면

    이 영화가 코미디로만 끝나지 않는 이유는, 웃음의 재료가 전부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지가 뛰는 일자리들은 하나같이 불안하고, 아무리 부지런해도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별개가 되어버린 세상. 영화는 이걸 웃기게 보여주는데 웃고 나면 더 씁쓸해집니다.


    제프가 배달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 대신 로봇을 쓰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는 장면도 그랬습니다. 부자였을 때는 기술과 투자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가난해지자 그 기술 때문에 일자리부터 잃습니다.

     

    답없는 빈부격차에 자동화까지 겹치는 세상에서 나는 뭘 붙들고 살아야 하나…

    코미디 영화가 던지기에는 꽤 무거운 질문인데, 이 영화는 그걸 웃음에 실어서 던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한테 같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제프의 삶과 내 삶을 바꿔준다면 바꿀 건가. 솔직히 처음에는 바로 바꾼다 쪽이었습니다.

     

    지금 제 삶은 안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을 어떻게 메울지 고민하는 처지라, 아지의 상황이 남일 같진 않았거든요.


    하지만 부자가 된 아지가 노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장면에서 흔들렸습니다. 돈이 아지를 갑자기 나쁜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귀하게 여겼던 사람과의 약속을 돈이 생긴 뒤에는 제대로 못 보게 되는데요.

     

    저는 여기서 제 주변을 떠올렸습니다. 저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얼굴이요. 커다란 성공이나 부도 좋지만, 그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지금 가진 게 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이 영화에 있습니다.


    그러다 이상한 생각이 하나 들었습니다. 이런 제 삶도 누군가에게는 제프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카드값을 고민하는 삶이지만 저한테는 돌아갈 집이 있고, 같이 웃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러움이라는 건 늘 위만 보는 감정이라서, 제가 서 있는 자리가 누군가에게는 위일 수 있겠구나 생각해봤습니다.

     

    확실히 호였지만, 결말은 조금 쉬웠습니다

    가난을 경험한 제프가 배달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라고 나서면서 문제가 비교적 쉽게 정리됩니다. 한 사람의 선의로 현실이 그렇게 빨리 달라질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겁니다. 사회문제를 꺼낸 것에 비해 답이 너무 순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저는 그 순진함이 싫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세상의 정답을 내놓는 순간보다, 인간이 된 가브리엘이 처음 겪는 사소한 즐거움에 반응하는 순간들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자체는 누구에게도 무시받아서는 안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카드값을 고민하면서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밀고 가는 삶이라면 그걸로 이미 대단한 겁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가브리엘 같은 존재가 저를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천사까지는 아니어도, 그런 순간이 온다고 믿는 쪽이 사는 데 낫습니다.


    저는 다 보고 나서 결론이 단순해졌습니다. 더 즐겁게, 더 열심히 살자.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오늘의 저를 잘 대해주는 게 빠르겠다 생각한거죠.

     

    <굿 포츈>. 저는 한번쯤 볼 만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웃으려고 봤다가 인생 질문 하나를 받아오는 영화는 흔하지 않으니까요.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굿 포츈> 포토
    ※ 참고 자료: 영화 <굿 포츈> 공식 작품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