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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을 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뭔가를 전하고 싶은데 입이 안 떨어지고, 괜히 폰만 들여다보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그런 순간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 가득한데, 막상 마주치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웃고 넘겨버렸던 기억. 영화 청설은 그런 마음을 수어와 침묵으로 담아낸 청춘 로맨스입니다. 영화 청설을 보고 나서 그 때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게 있고, 소리가 없어도 두근거리는 게 있다는 걸, 이 영화는 꽤 조용하고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출처: 나무위키

     

    설렘: 아무것도 없는 청춘이 사람을 만날 때

    대학을 졸업했는데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용준은 엄마 등쌀에 떠밀려 도시락 배달 알바를 시작합니다. 그러다 마주친 여름.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용준은 바로 그 자리에서 흔들립니다. 문제는 여름이 수어로만 대화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용준은 그녀가 청각장애인이라고 생각하고, 더 가까워지기 위해 수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들이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게 되잖아요. 그 사람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 듣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도 읽어보고요. 서툴게 손을 움직이고, 틀려도 다시 해보고. 용준이 수어를 익혀가는 과정이 그냥 설정이 아니라 진짜 마음처럼 느껴졌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어서 뭔가를 바꾸려는 사람의 모습이 있었으니까요. 홍경이라는 배우가 그 풋풋함을 참 잘 담아냈습니다. 과하지 않게, 그냥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소통: 보이는 것으로 느끼는 감정

    청설의 가장 독특한 점은 영화 대부분이 조용하다는 겁니다. 주인공 둘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 침묵이 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뭔가 말을 해줘야 감정이 전달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한 20분쯤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표정을 보게 되더라고요. 눈빛, 손끝, 잠깐의 머뭇거림. 말이 없는 장면들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버스 안에서 수어로 대화하던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은 거의 다 폰만 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손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그게 오히려 낯설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뭔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요. 클럽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끄러운 공간인데, 카메라는 소리 대신 얼굴들을 담습니다. 음악을 귀로 듣지 않아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걸, 그 장면은 아주 조용하게 말해줍니다.

     

    반전: 오해에서 시작된 사랑의 온도

    사실 여름은 청각장애인이 아닙니다. 청각장애인인 동생 가을(김민주)과 소통하기 위해 수어를 써왔던 것이고, 용준이 먼저 수어로 말을 걸어오니 그쪽도 그러려니 했던 거죠. 두 사람은 서로를 오해한 채로 가까워진 겁니다. 이 반전이 공개되는 순간, 잠깐 멍해졌습니다. 충격이라기보다는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기분. 되감아보면 영화 곳곳에 힌트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속아 넘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반전 이후 전개가 조금 아쉬웠던 건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용준의 반응이 생각보다 너무 담담했고, 감정이 쌓인 것에 비해 해소가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얽히고 흔들렸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어요. 저였으면 한동안 멍하니 있었을 것 같은데 싶더라고요. 그래도 여름이 왜 동생에게 모든 걸 바쳐왔는지, 왜 용준 앞에서 자꾸 물러서려 했는지를 이해하게 되면, 그 캐릭터가 다르게 보입니다. 가족 중 혼자 청각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평생 책임을 자처해온 사람. 그 무게가 꽤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영화 청설은 큰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 작품은 아닙니다. 대신 말보다 표정, 대사보다 손짓으로 감정을 전하는 영화입니다. 조용하게 흘러가지만 그만큼 인물들의 마음이 오래 남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고 시끄러운 일상 속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은 날이라면, 한 번쯤 추천하고 싶은 청춘 로맨스였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SSuJAytPT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