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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쩌면 해피엔딩> 을 보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작가 이름을 검색하는 것이었습니다. 박천휴. 이 사람이 또 만든 게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영화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23년 제작되어 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된 뒤, 2025년 정식 개봉한 이원회 감독의 뮤지컬 영화입니다. 박천휴가 작사하고 윌 애런슨이 작곡했으며, 두 사람이 함께 극본을 쓴 동명 창작뮤지컬이 원작입니다. 신주협과 강혜인이 올리버와 클레어를 연기했습니다. 헬퍼봇이라는 이름의 로봇이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세상이 배경입니다. 올리버와 클레어, 두 로봇이 여행을 떠나고 사랑을 배웁니다. 줄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1시간 반 동안 질문이 세 번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세상이 궁금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로봇이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이 그냥 펼쳐져 있습니다. 로봇이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고, 공원에서 노인 옆에 앉아 있고, 아파트 복도를 걸어다닙니다. 구형 헬퍼봇들은 시대에 뒤처진 채 애물단지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저 로봇들은 쓸모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질문은 영화 속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미 AI 스피커가 집 안에 있고, 챗봇이 상담을 하고, 로봇이 커피를 내리는 카페가 생겼습니다. 올리버처럼 한집에서 생활하며 사람과 오랜 관계를 맺는 단계까지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아주 먼 미래같진 않았습니다. 그게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걸렸습니다. 단순히 픽션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아서요.
로봇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부분 그 세상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반란이 일어나거나, 착취가 있거나, 공존의 윤리를 정면으로 따집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그런게 없고 그냥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두 로봇의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공이 나오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마음이 슬그머니 가라앉으면서, 올리버와 클레어를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는 두 사람(?)의 끝이 궁금했습니다
올리버는 쓸모가 다한 구형 헬퍼봇입니다. 인간들에게 버려진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재즈 레코드를 듣고 작은 화분을 돌보며 살아갑니다. 클레어는 같은 층에 사는 헬퍼봇입니다. 충전기가 고장 나 올리버의 문을 두드리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처음엔 두 로봇 사이가 좋지 않지만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달라지는 방식이 요란하지 않습니다. 함께 길을 나서고, 낯선 곳에서 곤란한 일을 겪고, 상대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서로가 필요해집니다. 이 두 존재는 사랑이 뭔지 몰라서 천천히 배우면서 사랑합니다. 감정을 분석하고, 오류를 점검하고, 이건 아마 사랑인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냅니다.
그 느림이 이상하게 부러웠습니다. 사람이 사랑할 때는 감정이고 뭐고 이미 한참 깊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올리버와 클레어는 적어도 자기 감정 앞에서 솔직합니다. 너무 솔직해서 가끔 웃기고, 가끔은 짠합니다.
그 둘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 시점에 클레어의 수명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가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잠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을 듣고, 여행을 다니고, 사랑을 하는 이 두 존재가 로봇이라는 게 갑자기 어색해졌습니다. 이게 로봇 이야기인지, 그냥 사람 이야기인지.
마지막에는 기억이 의심스러웠습니다
클레어는 몸이 점점 망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걱정하는 올리버가 부담스러워진 클레어는 관계를 정리하자고 합니다.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요. 그리고 둘은 함께했던 기억을 삭제하기로 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불편했습니다. 아무리 로봇이지만 버튼 하나로 그 시간이 다 날아간다는 게 너무 쉽다고 느껴졌습니다. 짐이 되기 싫어서 관계를 끊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다만 기억까지 삭제한다는 건 다른얘기 입니다. 함께 웃었던 시간,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순간, 서로의 결함을 알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 감각들이 파일 삭제하듯 없어진다는 게 억울했습니다. 클레어가 안타까운 게 아니라, 지워지는 그 시간들이요.
영화 끝에서 클레어는 다시 올리버의 문을 두드립니다. 충전기가 고장 났다며.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이유로 같은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올리버가 문을 열어주자 클레어가 묻습니다. "괜찮을까요?" 올리버가 답합니다. "어쩌면요."
올리버는 기억을 지우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알 수 없는 쪽은 클레어입니다. 클레어가 기억을 전부 지운 건지, 일부가 남은 건지, 기억은 없어졌어도 몸 어딘가에 습관처럼 남아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좀 웃긴 건, 저는 올리버가 기억을 지우지 않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겁니다. 사람이 로봇에게 추억을 간직하라고 응원을 하다니요. 클레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모든 시간을 혼자 기억하는 올리버에게는 오히려 더 아픈 결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둘이 함께한 시간이 적어도 한쪽에게는 남아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건 제가 지워지는 기억을 로봇의 정보가 아니라, 둘이 실제로 살았던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 여행과 사랑은 정말 있었던 일이 맞을까.
사람도 결별을 선언하고, 연락처를 지우고, 사진 폴더를 비웁니다. 기억을 지우는 버튼이 없어서 못 지울 뿐이지, 지우고 싶을 때가 없었던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삭제 버튼이 없는 사람은 결국 알게 됩니다. 사진을 없애도 냄새가 남고, 연락처를 지워도 습관처럼 이름을 검색하고, 자다가 문득 그 사람의 목소리를 떠올리기도 한다는 걸요.
클레어에게 정말 기억을 지우는 버튼이 있었는데도 다시 같은 문 앞에 섰다면, 올리버와 클레어가 우리와 다른 존재일까요. 기억이 남아서 찾아온 것인지, 기억을 잃고도 다시 찾아온 것인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것을 완전한 해피엔딩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한 쪽은 둘의 과거를 기억하고, 다른 한 쪽은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불행한 결말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둘은 다시 만났고, 올리버는 또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제목이 ‘어쩌면’ 해피엔딩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앞에 붙은 ‘어쩌면’은 영화의 망설임이면서, 이 결말을 행복하다고 믿고 싶은 제 망설임이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생각났습니다. 우리 현실에 실제로 올리버와 클레어에 가까운 존재들이 나타나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자신의 기억을 지울지 말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뭐라고 할까. 로봇이 기억을 지우는 모습을 보며 찜찜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이 이야기를 처음 만든 사람이 궁금해진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박천휴와 윌 애런슨. 사랑을 모르는 존재가 사랑을 배우는 이야기를 왜 뮤지컬로 먼저 만들었는지, 무대에서는 기억을 지우는 선택과 두 사람의 재회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클레어가 그 문 앞에 나타난 것은 영화가 내놓은 결론일까, 아니면 제가 네 번째 질문을 시작하게 만든 장면일까.
어떤 작품은 보고 나면 그걸로 끝입니다. 이 영화는 보고 나서도 계속 뭔가를 찾아보게 했습니다. 저에게 〈어쩌면 해피엔딩〉은 답을 찾게 만든 영화가 아니라, 질문을 세 번 바꿔놓고도 하나를 더 남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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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 포토, 넷플릭스 코리아
※ 참고 자료
- 영화 <어쩌면 해피엔딩> 공식 작품 정보
- 인디스페이스 이원회 감독·신주협·강혜인 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