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강아지 초코가 떠난 지 1년쯤 됐습니다. 요즘도 가끔 생각합니다. 초코가 딱 하루만 돌아온다면 뭘 할까.
이상하게 특별한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같이 걷던 산책길에 다시 가고, 늘 누워 있던 자리에 같이 누워서 장난치고, 좋아서 환장하던 쥐포를 주고. 그게 전부입니다. 근사한 곳에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든 적이 없습니다.
혼자 이 영화를 보다가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돌아온 수아와 우진, 지호가 보낸 시간도 결국 그런 하루들이었으니까요.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작품 정보
- 개봉: 2018. 03. 14.
- 장르: 멜로·로맨스, 판타지, 드라마
- 감독: 이장훈
- 각본: 이장훈, 강수진
- 원작: 이치카와 다쿠지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출연: 소지섭(우진), 손예진(수아), 김지환(지호), 고창석(홍구)
- 러닝타임: 131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 소설과 2004년 동명 영화를 바탕으로 다시 만든 한국 멜로영화이자 이장훈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입니다. 원작의 판타지적 설정은 유지하면서 인물과 에피소드, 가족 관계에 한국판만의 변화를 더했습니다.
아내 수아를 먼저 떠나보낸 우진은 어린 아들 지호와 둘이 살아갑니다. 수아는 세상을 떠나기 전 지호에게 1년 뒤 장마가 시작되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깁니다.
그리고 정말 1년 뒤 비가 내리던 날, 모습은 그대로지만 두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은 모두 잃은 수아가 돌아옵니다.
돌아온 사람과 보내는 평범한 하루
설정만 보면 굉장히 슬픈 판타지입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왔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에는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특별한 시간을 놀랄 만큼 평범한 일상으로 채웁니다.
수아는 지호의 도시락을 싸고, 우진과 장을 보고, 셋이 밥상에 둘러앉습니다. 함께 우산을 쓰고 학교에 가고, 빨래를 개고, 산책을 합니다. 한정된 시간이라는 걸 아는 우진이 뭔가 대단한 이벤트를 벌일 법도 한데,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일상을 삽니다.
처음엔 그게 답답했는데 초코 생각을 하니까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저도 만약 초코가 하루만이라도 온다면 어디 멀리 갈 생각이 없습니다. 늘 걷던 그 산책길이면 충분합니다. 그 애랑 있던 보통의 시간이 이미 특별했으니까, 다시 갖고 싶은 것도 그 보통의 시간입니다.
지호한테 필요했던 건 놀이공원이 아니라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었고, 우진한테 필요했던 것도 아내와 마주 앉는 저녁이었을 겁니다.
콩장 열 컵이 알려준 빈자리
영화에서 수아가 없는 동안 우진과 지호가 사는 모습이 나옵니다. 서툴게 밥을 챙기는, 어딘가 어설픈 살림. 그 장면들을 보다가 웃음이 났습니다. 저희 집 콩장이 생각나서요.
엄마가 며칠 여행을 가셔서 집이 빈 적이 있습니다. 동생이랑 콩장을 해 먹겠다고 냄비를 꺼냈는데, 콩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한두 컵이면 됐을 것을, 모르니까 더 넣고 또 한번 넣고 하다가 한 열컵 가까이 넣은 것 같습니다.
냄비 한가득 콩장이 나왔고, 저희는 한동안 콩장만 질리게 먹었습니다. 반찬통을 열 때마다 콩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줄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차려지던 밥상이 사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요.
콩 몇 컵인지 아는 것. 그 사소함이 쌓여서 일상이 돌아가고 있었다는 걸, 엄마가 없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영화 속 우진과 지호의 어설픈 살림이 웃기면서도 짠했던 건 그래서였습니다. 사람의 자리는 큰 데서보다 콩 몇컵 같은 작은데서 먼저 드러납니다.
알면서도 다시 선택하는 마음
이 영화의 결말은 앞의 이야기를 전부 다시 보게 만듭니다.
젊은 수아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동안 자신의 미래를 미리 봅니다. 우진과 결혼하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까지 전부 다요.
그걸 알면서도 그 삶을 골랐습니다. 지호를 낳고, 우진 곁에 있고, 약속대로 장마에 돌아오는 삶을요.
저는 이 결말이 무리한 반전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초코를 생각하면 이해가 됐으니까요.
만약 초코가 하루만 왔다가 다시 떠난다는 걸 미리 안다고 해도, 저는 만나는 쪽을 고를 겁니다. 헤어짐을 한 번 더 겪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다시 보내면서 아프더라도 그 하루를 아예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수아의 선택이 그거였다고 생각합니다.
끝을 알아도, 그 끝까지 가는 동안의 보통의 날들이 그 값을 하고도 남는다는 것. 영화는 그 계산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시락과 우산과 밥상으로 그냥 보여줍니다.
초코가 정말 하루만 온다면, 그날 저녁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산책 갔다 와서, 늘 눕던 자리에서 한참 장난치다가, 쥐포를 조금 떼어줄 겁니다. 좋아서 환장하겠지요.
그 얼굴을 한 번만 더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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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포토
※ 참고 자료: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식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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