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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가 떠난 지 1년쯤 됐습니다. 요즘도 가끔 생각합니다. 초코가 딱 하루만 돌아온다면 뭘 할까. 이상하게 특별한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같이 걷던 산책길에 다시 가고, 늘 누워 있던 자리에 같이 누워서 장난치고, 좋아서 환장하던 쥐포를 주고. 그게 전부입니다. 근사한 곳에 데려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든 적이 없습니다.
혼자 이 영화를 보다가 그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돌아온 수아와 우진, 지호가 보낸 시간도 결국 그런 하루들이었으니까요.

장마와 함께 돌아온 사람
2018년 개봉한 이장훈 감독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소지섭과 손예진이 나옵니다. 비가 오는 날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수아가, 1년 뒤 장마가 시작되던 날 정말로 돌아옵니다. 기억은 전부 지워진 채로요.
남편 우진과 아들 지호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수아와 다시 같이 삽니다. 장마가 끝나면 수아도 떠난다는 걸 알면서 말입니다.
설정만 보면 슬픈 판타지인데, 그 특별한 시간을 영화는 놀랄 만큼 평범한 일상으로 채웁니다. 밥을 차리고, 우산을 쓰고 등교를 하고, 빨래를 개고. 근데 저는 그 평범함이 이 영화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아온 사람과 보내는 평범한 하루
수아가 돌아와서 하는 일들은 사소합니다. 지호의 도시락을 싸고, 우진과 장을 보고, 셋이 밥상에 둘러앉는 것. 한정된 시간이라는 걸 아는 우진이 뭔가 대단한 이벤트를 벌일 법도 한데, 영화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일상을 삽니다.
처음엔 그게 답답했는데 초코 생각을 하니까 바로 이해가 됐습니다. 저도 초코가 하루만 온다면 어디 멀리 갈 생각이 없습니다. 늘 걷던 그 산책길이면 충분합니다. 그 애랑 있던 보통의 시간이 이미 특별했으니까, 다시 갖고 싶은 것도 그 보통의 시간입니다.
지호한테 필요했던 건 놀이공원이 아니라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었고, 우진한테 필요했던 것도 아내와 마주 앉는 저녁이었을 겁니다.
콩장 열 컵이 알려준 빈자리
영화에서 수아가 없는 동안 우진과 지호가 사는 모습이 나옵니다. 서툴게 밥을 챙기는, 어딘가 어설픈 살림. 그 장면들을 보다가 웃음이 났습니다. 저희 집 콩장이 생각나서요.
엄마가 며칠 여행을 가서 집이 빈 적이 있습니다. 동생이랑 콩장을 해 먹겠다고 냄비를 꺼냈는데, 콩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한두 컵이면 됐을 것을, 모르니까 더 넣고 또 한번 넣고 하다가 한 열컵 가까이 넣은 것 같습니다.
냄비 한가득 콩장이 나왔고, 저희는 한동안 콩장만 질리게 먹었습니다. 반찬통을 열 때마다 콩장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줄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매일 아무렇지 않게 차려지던 밥상이 사실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요. 콩 몇 컵인지 아는 것. 그 사소함이 쌓여서 일상이 돌아가고 있었다는 걸, 엄마가 없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영화 속 우진과 지호의 어설픈 살림이 웃기면서도 짠했던 건 그래서였습니다. 사람의 자리는 큰 데서보다 콩 몇컵 같은 작은데서 먼저 드러납니다.
알면서도 다시 고르는 마음
이 영화의 결말은 앞의 이야기를 전부 다시 보게 만듭니다. 수아는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은 동안 자신의 미래를 미리 봅니다. 우진과 결혼하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까지 전부 다요. 그걸 알면서도 그 삶을 골랐습니다. 지호를 낳고, 우진 곁에 있고, 약속대로 장마에 돌아오는 삶을요.
저는 이 결말이 무리한 반전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초코를 생각하면 이해가 됐으니까요.
만약 초코가 하루만 왔다가 다시 떠난다는 걸 미리 안다고 해도, 저는 만나는 쪽을 고를 겁니다. 헤어짐을 한 번 더 겪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다시 보내면서 아프더라도 그 하루를 아예 포기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수아의 선택이 그거였다고 생각합니다. 끝을 알아도, 그 끝까지 가는 동안의 보통의 날들이 그 값을 하고도 남는다는 것. 영화는 그 계산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보여줍니다. 도시락과 우산과 밥상으로.
초코가 정말 하루만 온다면, 그날 저녁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산책 갔다 와서, 늘 눕던 자리에서 한참 장난치다가, 쥐포를 조금 떼어줄 겁니다. 좋아서 환장하겠지요. 그 얼굴을 한 번만 더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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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시간여행자의 아내> 포토
※ 참고 자료: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공식 작품 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