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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 신기할 것 같고 한 번쯤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바닷속에 사는 흐물흐물한 생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얼마 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한 남자가 매일 바다에 들어가서 야생 문어 한 마리와 교감을 쌓아가는 다큐멘터리인데, 보는 내내 신기하고 뭉클했습니다. 처음엔 문어도 사람을 경계하는지 슬쩍 다가갔다가 멀어지고, 촉수로 조심스럽게 손을 건드려보고 하는 모습이 마치 서로를 탐색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거리를 좁히고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과정을 보는데,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과정이랑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문어가 주변 환경에 맞춰 몸 색깔을 거의 똑같이 바꾸는 장면에서는 정말 소름이 돋았어요. 저게 그냥 본능적인 반응인지, 아니면 어느 정도 스스로 판단해서 하는 행동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이 생명체는 도대체 얼마나 똑똑한 걸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그렇게 영리하고 신비로운 동물인 줄 몰랐습니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영화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을 보게 됐는데, 시작하자마자 '아, 이거다' 싶었습니다.

     

    출처: 넷플릭스

     

    신비: 늙은 문어, 마셀러스

    이 영화에도 마셀러스라는 늙은 문어가 나오는데,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거의 현자 같은 존재로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가더라고요. 다큐를 먼저 보고 와서 그런지 마셀러스가 그냥 동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모든 걸 지켜보고, 알고, 묵묵히 도와주는 누군가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인간들은 마셀러스를 바다에서 구조해서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마셀러스 본인은 자신을 좁은 수조에 갇힌 포로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인간에게 어딘가 염증을 느끼면서 탈출만을 꿈꾸는 냉소적인 관찰자였던 거죠. 그런 그가 캐머런과 토바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결국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두 사람을 돕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과정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차갑던 존재가 따뜻해지는 변화를 지켜보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 같았어요. 알프레드 몰리나의 내레이션 목소리도 그 느낌을 한층 더해줬습니다. 요즘 이렇게 마음 따뜻해지는 영화 찾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오랜만에 만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다정: 너무 귀여운 할머니, 토바

    샐리 필드가 연기한 토바라는 할머니 캐릭터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나이가 여든 가까이 되는데도 수족관에서 야간 청소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돈이 궁해서가 아니라 그냥 바쁘게 지내고 싶어서라는데, 그 마음이 너무 와닿더라고요.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괜히 손이라도 움직이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 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토바가 사는 오래된 목조주택은 곳곳이 낡고 삐걱거렸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낡은 집이 토바의 마음을 그대로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된 상처를 품은 채, 혼자 조용히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캐머런이라는 청년이 임시로 청소 일을 맡게 되면서 둘이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게 또 은근히 웃기고 귀엽습니다. 청소 요령 가르쳐준다고 잔소리하는 토바 모습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었어요. 게다가 캐머런이 좋아하는 여자한테 우물쭈물하니까 대신 전화 걸어서 데이트 신청까지 해주는 장면에서는, 오지랖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반대로 캐머런도 토바의 빈집에 들어가 고장 난 곳을 슬쩍 고쳐주고 계단 손잡이를 달아주는데, 서로의 삶에 조심스레 한 발씩 들어가는 그 모습들이 참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진심: 큰 삶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 남았던 대사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프로포즈 장면인데, "당신 삶이 내 삶보다 훨씬 커서 그래서 당황했어요. 난 당신이 정말 좋아요. 허락해 준다면 그 큰 삶의 일부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그 사람을 다 가지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 한 켠에 조용히 끼어들고 싶다는 마음이라는 게, 표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내가 그 사람한테 부족하지 않을까 망설이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대사는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용기 내서 다가가는 마음이라서 더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문어의 독백도 오래 곱씹게 되더라고요. "인간은 대체로 따분하고 실수투성이지만, 때때로 놀랍고도 영리한 생명체가 되기도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관계: 가족이 된다는 것

    토바와 캐머런이 사실 할머니와 손자 사이였다는 걸 알게 되는 장면에서는 저도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영화 속 토바는 좁은 수조 안에 갇힌 채 외로워하는 문어와 닮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진심을 나눌 사람 없이 혼자 견디고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요즘 우리도 다들 각자의 수조 안에서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우리에겐 문어와 달리 마음을 표현할 언어가 있는데도 정작 원하는 걸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고립시킬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캐머런이 낡은 차를 끌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엄마의 고향까지 흘러온 것도, 토바가 떠나려 하면서도 쉽게 마을을 떠나지 못했던 것도, 결국 마음을 누일 곳을 향한 발걸음이었던 것 같고요. 가족이라는 게 꼭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어쩌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였던 토바 곁에 결국 손자도 생기고, 친구도 생기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는 결말을 보면서 저도 같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문어 이야기를 본 것 같기도 하고, 결국은 사람 이야기를 본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속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o37orzxK5o
    https://www.youtube.com/watch?v=WsAwl1uGlw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