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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처음엔 그냥 틀어놓은 영화였습니다. 밥 먹으면서 뭐라도 봐야겠다 싶어서 넷플릭스를 켰고, 포스터에 햇살이 좋아 보여서 별 기대 없이 골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마늘이 익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가 먹던 밥이 갑자기 초라해 보였습니다. 저는 파스타 만들 때 꼭 이렇게 시작하거든요. 올리브유 두르고 마늘 먼저 볶는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요리보다 그 순간을 즐기려고 만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화면에서 그 장면이 나오는데 괜히 주방을 쳐다봤습니다. 토스카나의 돌담길과 포도밭이 나올 때는 또 괜히 창문 밖을 한 번 보게 됐습니다. 화려한 반전도 없고 극적인 갈등도 없는 영화인데, 끝날 즈음엔 마음이 조용하고 따뜻해져 있었습니다. 어떤 영화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기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 영화가 딱 그랬습니다.

     

    출처: 넷플릭스

     

    냉기 — 덴마크에서 온 차가운 요리사

    주인공 테오를 보다가 문득 예전 직장 상사가 떠올랐습니다. 일은 완벽하게 했고,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지만, 같이 있으면 어딘가 피곤한 사람. 테오가 딱 그랬습니다. 덴마크의 유명 셰프인 테오는 주방에서 완벽주의자고, 사람을 대할 때는 늘 날이 서 있습니다. 자기 레스토랑 오픈을 눈앞에 두고 투자자를 잃은 바로 그날, 오랫동안 연락조차 없던 아버지의 부고를 받습니다. 슬픔보다는 당혹감에 가까운 표정으로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르는 테오의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토스카나의 식당과 성을 팔고, 그 돈으로 자기 길을 계속 가는 것. 처음 토스카나에 도착해 식당 주방을 들여다보며 위생을 지적하고, 음식 방식이 낡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일군 공간인데, 저라면 그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어떤 관계든 오래 외면하다 보면 감정 자체가 굳어버린다는 걸, 테오는 몸으로 보여줍니다.

     

    온기 — 소피아가 건넨 토스카나의 맛

    소피아는 테오 아버지의 식당에서 일하던 여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 식당에서 자랐고, 아버지를 가족처럼 여겼습니다. 테오가 나타나 팔겠다고 하자 소피아는 말 대신 음식을 내놓습니다. 마을 장터에서 사온 재료로 만든 요리들, 오래된 레시피로 끓인 수프. 설득도 설명도 없습니다. 그냥 차려줍니다. 이 장면들이 저는 좋았습니다. 말로 설명해봤자 안 되는 사람한테는 그냥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더 빠를 때가 있거든요. 테오는 요리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음식들 앞에서 잠깐씩 멈춥니다. 자기가 평생 추구하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정확하지 않지만 따뜻한 맛. 소피아는 그렇게 식탁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두 사람 사이의 로맨스는 전개가 빠른 편이지만,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테오가 음식을 통해 아버지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이 진짜 이야기였습니다.

     

    여운 — 떠나기 싫어진 사람의 선택

    테오는 결국 식당을 팔지 않습니다. 영화 후반부, 아버지가 남긴 조각상에 새겨진 문구가 나옵니다. "모두가 똑같이 특별하다." 테오 어머니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특별하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의 눈에 띄면 누구든 특별해질 수 있다고. 저는 그 장면에서 잠깐 영화를 멈췄습니다.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달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게 가장 가까운 사람과 멀어지는 이유가 됐던 기억이 났습니다. 테오 이야기인데 왜 내 이야기 같지 싶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는 괜히 부모님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그냥 하고 싶었습니다. 극적이지 않고 예측 가능한 영화지만,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지치고 조용한 날 저녁에 틀기 딱 좋은 영화입니다. 저에게는 괜히 주방에서 마늘을 볶으면서 파스타를 만들고 싶어지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