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시간 좋아하고 미워하며 얽혀온 두 친구의 이야기.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리뷰입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기본 정보와 줄거리
기본 정보
- 공개일: 2025. 09. 12.
- 장르: 드라마
- 연출: 조영민
- 극본: 송혜진
- 출연: 김고은, 박지현, 김건우
- 구성: 15부작 리미티드 시리즈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기획·제작: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넷플릭스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면서도 질투하고 미워했던 두 친구의 관계를 30여 년에 걸쳐 따라가는 드라마입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랑의 이해〉의 조영민 감독이 연출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의 송혜진 작가가 극본을 맡았습니다.
줄거리
1992년, 초등학생 류은중은 부유한 환경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전학생 천상연을 만납니다. 은중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모두 가진 듯한 상연을 동경하고 질투하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상연 역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는 은중을 부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친구이자 경쟁 상대가 된 두 사람은 10대와 20대, 30대를 지나며 여러 차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합니다.
마흔셋이 된 은중은 드라마 작가로, 상연은 성공한 영화 제작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상연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뒤 은중을 다시 찾아와 자신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은중은 상연의 부탁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 두 번의 절교와 재회를 되짚습니다. 드라마는 현재의 마지막 동행과 과거의 기억을 오가며, 두 사람이 평생 서로를 좋아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따라갑니다.
2.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관람 포인트
- 1992년 초등학생 시절부터 20대와 30대, 마흔셋까지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지는 과정
- 은중과 상연이 서로를 동경하고 질투하는 이유가 번갈아 드러나며, 한 사람만 피해자나 가해자로 남지 않는 구조
- 현재의 마지막 동행이 과거의 절교와 재회, 오래된 말과 표정을 다시 해석하게 만드는 방식
그린팝콘 픽|은중 ‘과’ 상연
누가 더 잘못했고 누가 더 상처받았는지를 판단하기보다, 두 이름 사이에 놓인 ‘과’를 기억해 보세요. 작품의 제목은 은중 ‘대’ 상연이 아니라 은중 ‘과’ 상연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좋아하면서도 상대의 삶을 부러워하고,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결핍을 더 선명하게 발견합니다. 여러 번 관계를 끊어내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다시 상대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친구도 적도 아닌 채로 서로의 인생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조영민 감독은 이 작품의 색깔을 ‘동행’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은중과 상연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자신과 친구를 떠올리고,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용서하며 자기 자신을 알게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 참고 자료: 넷플릭스 공식 뉴스룸 「〈은중과 상연〉 9월 12일 공개 확정! 김고은·박지현이 선보이는 선망과 원망 사이」
3. 관람평|82년생이 어린시절 사진을 찾고 싶어진 이유
포스터에서 김고은, 박지현 두 사람 얼굴만 확인하고 재생을 눌렀습니다. 이 조합이면 연기 걱정은 없겠다. 딱 그 계산 하나였습니다.
어린시절 장면이 시작되고부터는 미동도 안 하고 몇 편을 내리 봤습니다. 국민학교 교실 칠판 글씨체,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는 방식, 교실 특유의 그 공기까지. 제 기억 속 어딘가에 있던 장면들이 화면에 그대로 펼쳐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극 중 교실과 제 기억 속 교실이 구분이 안 됐습니다.
향수라고 부르기엔 좀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운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시절 제가 느꼈던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통째로 딸려 올라왔거든요.
국민학교 교실에서 멈춘 화면
극 중 82년생인 류은중과 천상연의 어린시절은 저의 어린시절과 정확히 겹칩니다. 저는 어디가서 82년생만 만나도 너무 반가워 하는 사람인데 드라마에서 두명이나 나오다니요. 드라마를 본다기보다 제 어린 시절 교실에 다시 앉아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저희 반에도 있었습니다. 피부 뽀얗고, 공부 잘하고, 집도 잘사는 친구. 저는 그 친구 옆에서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감정을 자주 느꼈습니다. 부럽다고만 하기엔 뭔가 더 얹혀 있는, 그 찝찝함이요. 그때는 그 감정을 처리할 언어가 없어서 그냥 삼켰습니다. 마흔이 넘어 드라마를 보다가 사십 년 묵은 그 감정과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습니다.
드라마는 이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줍니다. 반 풍경, 칠판 글씨, 아이들 옷차림, 두 아이가 서로를 훔쳐보는 각도.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분들이라면 아마 저와 같은 장면에서 멈추게 될 겁니다.
아역들 연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어른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아역 배우들이 표정과 행동만으로 쌓아가는데, 어색한 순간이 없었습니다. 천상연의 어린 시절을 맡은 배우가 류은중을 바라보는 그 눈빛 하나로 설명이 끝납니다. 대사가 필요 없었습니다. 이 감정선이 제대로 잡힌 덕분에 시간이 흘러 김고은과 박지현으로 바뀌어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역이 흔들렸다면 15부작 전체가 흔들렸을 겁니다.
일기장을 들킨 얼굴
두 사람이 서로를 부러워하는 방식이 참 정확하다고 느꼈습니다. 류은중은 천상연의 재능과 환경을 부러워하고, 천상연은 류은중의 성품과 그 집의 온기를 부러워합니다. 둘 다 서로를 기준점 삼아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며 살았고,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압니다. 각자 상대방이 되고 싶어서 수십 년을 앓았는데, 정작 상대도 똑같이 앓고 있었다는 걸 마흔이 넘어서야 아는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이 참 허망하고 아팠습니다.
천상연이 일기를 들키고 폭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꽁꽁 숨겨뒀던 찌질한 감정을, 하필 자기가 열등감을 느끼는 바로 그 사람에게 발각당한 겁니다. 차라리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봤다면 그렇게까지 무너지지 않았을 겁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그 장면에서 혼자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저한테도 그런 감정이 있거든요, 아직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속으로 비교하고, 비교한 자신을 또 자책하는 루프. 마흔이 넘어도 버전만 바뀌지 사라지질 않더라고요. 국민학교 때 그 친구 자리에 지금은 다른 이름들이 들어와 있을 뿐입니다.
드라마는 두 사람의 마음을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흘겨보는 눈빛이나 갑자기 굳어버리는 얼굴을 오래 보여줍니다. 저는 그 표정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제 어린 시절까지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본 기분과 제 일기를 들킨 기분이 동시에 들었으니까요.
스위스로 가는 마지막 동행
천상연은 말기 판정을 받고 류은중에게 마지막 여정을 함께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여정의 끝은 스위스입니다. 스위스에서는 당사자가 스스로 마지막 행위를 하고, 조력자에게 이기적인 목적이 없는 경우 조력사망이 허용됩니다.
디그니타스처럼 외국인의 신청도 받는 기관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주제라, 이 소재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끝도 없이 울었습니다. 눈물이 정말 줄줄줄 흘러나오더라고요...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젠가 저에게도, 제 곁의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옵니다. 머리로는 알면서 한 번도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 없던 장면을 드라마가 먼저 보여준 건데, 그 기분이 참 복잡했습니다.
제가 걱정했던 건 이 장면을 지나치게 슬프거나 아름답게만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드라마는 상연의 선택과 그 곁에 남아야 하는 은중의 얼굴을 오래 보여주기만 하는데요, 근데 그것 때문에 저는 감정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이 장면을 들고 있는 배우가 박지현입니다. 화면 속에는 통곡이 없는데 보는 제가 대신 펑펑 울고 있었습니다. 김고은은 워낙 두터운 배우라 믿고 시작했지만, 다 보고 나서 더 강하게 남은 쪽은 박지현이었습니다. 배우 한 명을 이렇게 새로 발견하는 경험은 오랜만이라, 이 배우가 나오는 다음 작품은 제목만 보고도 틀게 될 것 같습니다.
15부작이라는 길이는 솔직히 시작 전에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요즘처럼 볼 게 쏟아지는 시대에 열다섯 편은 짧은 약속이 아니니까요. 제 경우 14화와 15화 후반부가 살짝 늘어졌던 걸 빼면 나머지 13편은 길이를 의식할 틈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압축했다면 드라마의 묵직함이 뭔가 가벼워졌을 것 같습니다.
다 보고 나서 어린시절 사진을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국민학교 때 반 단체사진이 어딘가 있을 텐데, 거기엔 그 뽀얗던 친구도 같이 찍혀 있을 겁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살까요. 혹시 그 친구도 그 시절 제 옆에서, 저는 상상도 못 한 이유로 저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을까요. 드라마를 다 본 지 며칠이 지났는데 이 질문이 아직 안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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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네이버 영화 <패어런트 트랩> 포토
※ 참고 자료
-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공식 작품 정보
- 김고은, 박지현 배우 인터뷰
- 스위스 조력사망 및 디그니타스 관련 공식 안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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