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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처음 틀었을 때는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딱히 할 일 없는 밤, 그냥 시간 때우려고 넷플릭스를 켠 거였거든요.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두 시였고, 어느새 정주행을 끝낸 뒤였습니다. 다 보고 나서 더 무서운 건, 시간이 지날수록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가 계속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처음 본 인상과 며칠 뒤 곱씹은 인상이 이렇게 다른 작품은 흔치 않더라고요.

     

    출처: 나무위키

     

    몰입 - 그냥 틀었다가, 새벽까지 본 이유

    저는 보통 화제작이라고 해도 1, 2화쯤 보면 슬쩍 휴대폰을 만지는 편입니다. 그런데 레이디 두아는 이상하게 손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한 화가 끝날 때마다 '다음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이 다음 화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구성을 클리프행어라고 부른다더군요. 매 회 결말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일부러 궁금증을 남기는 방식인데, 레이디 두아는 이걸 사건 전개에만 쓰지 않고 주인공 자체에 적용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목가희라는 인물이 회차마다 다른 이름, 다른 얼굴로 등장하다 보니 저는 처음엔 '이 사람 진짜 누구야?'라는 질문을 따라가게 됐어요. 그런데 다 보고 나니, 그게 이 드라마가 진짜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명품 구매대행, 신분 세탁, 상류층 사교 모임 같은 소재들도 그냥 자극적으로 쓰인 게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욕망의 구조와 맞닿아 있어서, 보는 내내 묘하게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체성 - 사라킴이 끝까지 한 사람으로 정리되지 않는 이유

    이 드라마에서 제일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끝까지 사라킴이 누구인지 확정해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전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능력 있는 사업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의지했던 친구,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구해준 은인, 누군가에게는 다 빼앗아간 사기꾼. 신기한 건 이 말들이 다 거짓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이 지점에서 드라마가 묻는 질문이 슬쩍 바뀐다고 느꼈습니다. '사라킴은 누구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각자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믿어버리는가'에 더 가까운 질문이었어요. 백화점 명품 매장 직원에서 시작해 구매대행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사업 자금을 모으려 화류계에서 썼던 이름, 위장 결혼을 위해 만든 가짜 신분, 부두아라는 브랜드를 이끌던 대표, 그리고 마지막까지 브랜드를 지키려 선택한 이름까지, 그녀가 거쳐 간 이름은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마지막에 '본명은 이거고, 어린 시절은 이랬다'는 설명이 친절하게 나왔다면 오히려 드라마가 평범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혜선이라는 배우가 이걸 다 따로따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연기해냈다는 게, 다 보고 나서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현실 - 빈센트 앤 코 사건을 찾아보고 나서 든 생각

    드라마를 보다가 '설마 이런 사기가 실제로 가능했을까'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궁금해서 찾아보니 실제 사건이 있더라고요. 2006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빈센트 앤 코 사건이었습니다. 경기도 공장에서 원가 10만 원짜리 시계를 만들고, 미완성 상태로 스위스에 보내 조립만 한 뒤 다시 들여와 정식 수입품처럼 신고를 받아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드라마 속 부두아 가방이 손잡이만 따로 영국으로 보내 조립 후 다시 들여오는 장면이 그냥 작가의 상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럽 왕실만 쓰는 시계'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톱스타 협찬까지 받아 청담동에 매장을 열었다는 실제 사건을 읽으면서, 명품의 가치라는 게 결국 사람들이 믿어주는 만큼만 존재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사라킴이 한 명의 사기꾼이 아니라,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욕망 그 자체를 입고 다니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진짜 얼굴'을 보여줄 수가 없었던 거고요. 아직 안 보셨다면, 일단 1화만 틀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처럼 새벽까지 보게 될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1-r3ievGc9g&t=15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