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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늦은 밤, 딱히 볼 게 없어서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멈춘 영화 한 편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10분만 보고 끄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유해진, 이준 주연의 영화 〈럭키〉입니다. 가벼운 코미디인 줄로만 알았던 이 영화는, 보면 볼수록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꽤 오랜 시간 영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계속 곱씹어야 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기억상실 - 청부살인업자가 잃어버린 건 기억만이 아니었던 이유

    영화는 냉혹한 청부살인업자 형욱이 사우나에서 미끄러져 기억을 잃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무명배우 재성은 인생을 비관하며 같은 사우나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두 사람의 사물함 열쇠가 뒤바뀌면서 형욱은 얼떨결에 재성의 삶을 살게 되는데, 이 설정 자체가 처음엔 다소 황당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황당함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욱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저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살인청부업자라는 무거운 직업과 기억을 잃은 순수한 인물 사이의 간극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 포인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해진 배우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이 설정을 정말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보는 내내 다음엔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반전 - 살인 기술이 연기력으로 둔갑해버리는 순간

    개인적으로 가장 웃음이 터졌던 부분은 형욱이 재성의 삶을 살아가며 오디션을 보는 장면들이었습니다. 평생 사람을 제압하던 몸놀림과 날카로운 눈빛이 연기 오디션장에서는 폭발적인 카리스마로 둔갑해버리는 모습이 정말 절묘했습니다. 살인 기술로 단련된 몸과 감각이 엉뚱하게도 연기 천재로 평가받는 아이러니를 보면서 저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거기에 재성의 동료 배우들과 얽히는 에피소드들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어딘가 어설프고 수상하게만 보이던 형욱이 점점 사람들과 정을 쌓아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따뜻하게 그려졌습니다.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캐릭터들 사이의 케미가 살아 있어서 보는 재미가 배가 되었습니다. 저는 특히 형욱이 서툴게나마 진심을 담아 사람들을 챙기는 장면에서 의외로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인생 -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보며 깨닫게 되는 것들

    솔직히 중간까지만 해도 그냥 웃긴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이상하게 형욱을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아무렇지도 않던 사람이 처음으로 누군가 걱정하고, 누군가 때문에 웃고,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나오는데 거기서 살짝 울컥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매일 비슷한 하루가 지겹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정작 형욱처럼 모든 걸 잃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지금의 일상도 꽤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형욱이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코미디 영화임에도 꽤 묵직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웃다가 울컥하게 만드는 그 완급 조절이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지금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 인생을 살게 된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상하게도 영화보다 그 질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찾고 계신 분이라면 꼭 한번 챙겨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E1RTlrJK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