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넘버원’을 보기 며칠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았어요.
“울 엄마… 천국 가셨어.”
친구는 그 말만 겨우 꺼내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며칠 뒤에 장례 치른 친구가 괜찮은지 걱정돼서 찾아갔었는데, 친구는 조문받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발인이 끝나고 혼자 집에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냉장고를 열어도 밥솥을 봐도 먹을 게 없었다고요.
정확히는, 엄마가 해주시던 그 밥이 없었던 겁니다.
"울엄마는 몸이 그렇게 안 좋으셨는데 내색 한 번을 안 하시고 늘 따신 밥 차려주셨거든. 그게 너무 그리워서 미치겠어."
친구는 그 말을 하면서 또 한참 울었습니다. 저는 해줄 말을 찾지 못한 채 등만 토닥거렸습니다.
그러고는 며칠 뒤에 영화 <넘버원>을 봤습니다. 하필 엄마밥이 나오는 영화였습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엄마 밥을 먹을수록 줄어드는 숫자
영화의 설정은 영리하면서 잔인합니다. 이 숫자가 무서운 이유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 저 숫자가 있다는 걸 영화가 계속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숫자를 볼 수 없을 뿐이지요.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다가 실제로 세어봤습니다. 엄마가 100살까지 사신다고 넉넉하게 잡아도 남은 시간은 30년입니다. 30년이면 주말이 대략 1,500번쯤 됩니다. 많아 보이지만 그 주말마다 엄마 밥을 먹는 게 아닙니다.
명절에 두어 번, 생신에 한 번, 어쩌다 들르는 주말까지 다 쳐서 일 년에 열 번쯤이라고 하면 남은 횟수는 300번 남짓입니다. 원작 제목의 328번이 과장이 아니었던 겁니다. 계산을 끝내고 나니 화면 속 숫자가 남 얘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민이 밥을 피하는 장면들은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핑계 대고 약속 잡고, 야근한다고 둘러대고, 다음에 먹자고 미루는 그 모든 장면이 너무 익숙했습니다. 은실이 정성껏 싸준 도시락까지 버려 버리는데 엄마를 살리려면 엄마가 가장 속상해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참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괜찮아, 얼른 먹어
영화 속 은실은 몸이 점점 안 좋아지는데도 티를 내지 않습니다. 부엌에서 힘든 내색 없이 늘 같은 얼굴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무칩니다. 그게 은실의 사랑이니까요.
저는 이 장면들에서 친구의 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친구 엄마도 그랬다고 했거든요. 통증이 심해서 앉아 있기도 힘든 날에 굳이 일어나 찌개를 끓이셨고, 힘들지 않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답니다. “괜찮아, 얼른 먹어.”
은실은 남편과 큰아들을 먼저 떠나보냈지만 하민 앞에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밥은?”이라는 짧은 말과 부엌을 오가는 움직임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은실이 주저앉는 순간이 저는 더 아팠습니다.
최우식 배우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은실이 수술을 받는 동안 하민은 엄마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히려 엄마가 만들어둔 음식을 먹습니다. 숫자가 하나 줄어드는 순간 엄마가 살아 있다는 안도와 남은 시간이 또 줄었다는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데요. 저는 여기서 눈물이 말도 못하게 줄줄줄 나왔습니다. 손에 있던 휴지가 다 젖을 만큼 펑펑 울었습니다.
영화관을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
영화가 끝나고 둘러보니 여기저기 눈들이 빨갰습니다. 저는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밥은 드셨어요?” 별것 아닌 통화였는데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나서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방금 3초 만에 연결된 그 목소리를, 친구는 이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전화가 사실은 언제까지나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넘버원>은 엄마 밥과 죽음이라는 소재 자체가 워낙 강해서 조금만 과했어도 신파가 됐을 겁니다. 하지만 장혜진은 관객보다 먼저 울지 않고, 최우식도 하민의 불안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울었고 울림도 컸던 것 같습니다.
하민에게 보였던 숫자가 저는 보이지 않지만 남은 엄마밥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끼 한 끼 미루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엄마밥을 먹는 것. 엄마도 그걸 가장 좋아하시겠다는 것도 함께 알게됐습니다.
영화 <넘버원> 작품 정보
영화 〈넘버원〉은 2026년 2월 11일 개봉한 드라마 장르의 영화입니다. 〈거인〉과 〈여교사〉의 김태용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으며, 최우식·장혜진·공승연이 출연합니다. 러닝타임은 105분, 관람등급은 12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합니다.
부산에서 엄마 은실과 살아가던 하민은 어느 날부터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 눈앞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드는 현상을 겪습니다. 숫자가 0이 되면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민은 엄마를 지키기 위해 집밥과 도시락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김태용 감독은 화면에 나타나는 숫자에도 시간의 흐름을 넣었습니다. 캘리그래피 작가 전은선이 하민이 어린 시절 쓴 듯한 동화적인 글씨로 숫자를 표현했는데요. 처음에는 색과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숫자가 줄어들수록 색은 바래고 움직임도 잦아듭니다. 남은 횟수와 함께 숫자 자체도 한 사람의 생애처럼 나이를 먹는 설정입니다.
※ 참고 자료: 디지털조선 TV 「김태용 감독 ‘〈넘버원〉, 저에게도 엄마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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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넘버원>, <코코> 포토
※ 참고 자료: 영화 <넘버원> 공식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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