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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를 혼자 보길 정말 다행이다 싶었어요. 옆에 누가 있었다면 민망해서 쩔쩔맸을 것 같습니다. 내용이 무거운 것도 아니고,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저는 솔직히 이 영화를 큰 기대 없이 켰습니다. '아, 할머니랑 손녀가 제주도에서 감동적으로 사는 이야기겠구나.' 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표면은 따뜻하고 잔잔한데, 속에는 꽤 무거운 것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기, 거짓, 죄책감, 그 위에 덮이는 사랑. 그게 뒤섞이는 방식이 이 영화를 단순한 '가족 영화' 이상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손녀 - 혜지라는 이름을 빌린 은주

    이 영화의 핵심 반전은 꽤 충격적입니다. 12년 만에 할망을 찾아온 '혜지'는 사실 진짜 손녀가 아닙니다. 진짜 혜지는 이미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의붓아버지가 보험금을 가로채기 위해 동거녀의 딸 '은주'에게 혜지 행세를 시킨 것이었습니다. 은주는 처음엔 그저 돈 때문에, 할망에게서 뭔가를 뜯어낼 생각으로 제주도에 왔던 것이죠.
    그런데 이 설정이 단순한 막장 드라마처럼 흘러가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은주가 할망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정말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해녀 일을 따라가고, 밥상을 함께 받고, 할망이 새벽에 자기 이불을 덮어주는 걸 눈을 감은 채로 느끼는 장면들. 말 한마디 없는데 그 장면들이 쌓여서 은주의 마음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죄책감에 고마움이 뒤섞인 그 복잡한 감정을 김고은이 표정 하나하나로 다 담아냈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할망 - 눈빛만으로 다 말하는 윤여정

    계춘 할망 역의 윤여정, 진짜입니다. 이 분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제주 해녀 특유의 걸음걸이, 억센 사투리, 손녀 앞에서만 해쓱해지는 웃음까지. 인위적이다 싶은 순간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은주가 진실을 말하기 전, 할망이 먼저 손을 잡아주는 장면입니다. 어쩌면 할망은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기로 한 걸 수도 있고요. 그게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더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이미 이 아이가 내 손녀가 됐다는 걸 가슴으로 받아들인 할망의 모습이, 말보다 훨씬 크게 전해졌습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신 게 이 영화 이후 일이지만, 계춘할망을 보면 '아, 진작에 받으셨어야 했는데' 싶습니다.

    제주 - 두 사람을 묶어준 또 하나의 가족

    이 영화에서 제주도는 그냥 예쁜 배경이 아닙니다. 할망이 70평생 살아온 삶의 전부이고, 은주가 처음으로 느끼는 '집'의 감각이 담긴 공간입니다.
    제가 제주도를 가본 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영화 속 돌담길이랑 유채꽃밭을 보는데 갑자기 그때 기억이 훅 올라왔습니다. 낮게 쌓인 검은 돌담, 바람 냄새, 해녀들이 물에서 올라오며 숨을 고르는 소리. 그게 영화 속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실제 주민이 살던 집을 촬영에 썼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어느 장면도 인공적인 느낌이 없었습니다. 은주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길도, 할망이 새벽 어둠 속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장면도, 풍경 자체가 이미 감정을 싣고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제주도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이 공간이 아니었다면 은주는 그냥 떠나버렸을 것입니다.

     

    솔직히 완벽한 영화는 아닙니다. 후반부 전개가 조금 급하고, 개연성이 약하다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빈틈을 윤여정과 김고은 두 사람의 연기가 다 메워버립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망이 은주를 끌어안을 때, 저는 이 영화가 '혈연'이 아니라 '선택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느꼈습니다.
    가족이란 게 꼭 피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밥 한 끼 같이 먹고, 이불 하나 덮어주고, 그러다 보면 그게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계춘 할망이 그걸 몸으로 가르쳐줬습니다.
    오랫동안 연락 못 한 가족이 있다면, 이 영화 보고 나서 한 번쯤 전화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그랬어요. 영화 한 편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영화 아닐까요. 계춘할망, 강력히 추천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i56epFug_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