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렇게까지 웃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코미디 영화니까 가볍게 즐기다 오자는 생각은 했지만, 옆자리 눈치가 보일 정도로 크게 웃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개봉 전 공개된 트라이앵글의 'Love is'와 최성곤의 '니가 좋아' 뮤직비디오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 오정세. 평소 이 배우들에게서 댄스와 랩, 세기말 가요계의 감성을 떠올리기는 어렵잖아요. 이 조합이 무대에서 대체 뭘 보여줄지 궁금해서 극장으로 갔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예고편은 본편의 1%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와일드 씽>은 어떤 영화일까
2026년 6월 3일 개봉한 <와일드 씽>은 손재곤 감독이 연출하고 김채우 작가가 각본을 쓴 107분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강동원, 엄태구, 박지현이 한때 인기를 누렸던 혼성 댄스 그룹 ‘트라이앵글’의 멤버로, 오정세가 라이벌 발라드 가수 최성곤으로 출연합니다. 관람등급은 12세 이상이며, 7월 31일부터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습니다.
한때 가요계를 휩쓸었던 트라이앵글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해체됩니다. 20년 뒤 생계형 방송인이 된 현우에게 재결합 공연 제안이 들어오고, 그는 재벌가 며느리로 살아가는 도미와 솔로 활동 실패 후 빚을 떠안은 상구를 다시 찾아 나섭니다. 20년 전 라이벌이었던 최성곤까지 합류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예상 밖의 방향으로 꼬입니다.
진지해서 더 웃긴 배우들
영화는 2000년대 초 인기를 누렸던 혼성그룹 ‘트라이앵글’이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해체된 뒤, 20년 만에 재결합 제안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배우들이 웃기려고 대충 망가지는 느낌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강동원은 헤드스핀과 브레이크댄스를 직접 소화했고, 엄태구는 랩과 안무를 위해 약 5개월 동안 연습했습니다. 특히 엄태구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랩을 배우며 촬영 중에도 틈이 날 때마다 연습실을 찾았다고 합니다.
평소 이미지와 워낙 다른 배우들이라 등장만 해도 웃긴데, 정작 본인들은 끝까지 진지합니다.
강동원은 자신이 정말 왕년의 댄스머신이었다고 믿는 사람처럼 무대를 밀어붙이고, 엄태구는 그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어설프지만 자신감 넘치는 랩을 합니다. 배우들이 장면을 우습게 대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웃겼습니다.
다만 트라이앵글 세 사람이 주고받는 코미디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웃긴 상황은 분명 많지만 대화가 리듬감 있게 치고 빠지지는 못했고, 장면과 장면 사이의 호흡도 긴 편이었습니다. 한 번 터진 웃음이 다음 장면까지 이어지기 전에 잠시 멈추는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그 빈틈을 관객들이 채워줬습니다. 제 뒷줄에 앉은 분들이 유머 장면마다 정말 신나게 깔깔 웃으셨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웃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따라 터졌고, 저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보다 더 크게 웃었습니다. 극장에서 이렇게 상영관 전체가 함께 웃는 느낌을 받아본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영화의 완성도만큼이나 그날 어떤 관객들과 함께 보느냐가 관람의 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느꼈습니다.
오정세의 존재감
이 영화의 히든카드는 역시 최성곤이었습니다.
최성곤은 과거 트라이앵글 때문에 음악방송에서 39주 연속 2위를 기록한 비운의 발라드 가수입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산에서 유해 야생동물을 잡는 사냥꾼으로 살아갑니다.
처음에는 ‘오정세니까 당연히 웃기겠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심을 사냥하던 발라드 왕자가 이제는 산에서 멧돼지를 쫓는 사냥꾼으로 살고 있다는 설정부터 예상보다 강했습니다.
방송국 PD와 작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그의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가 웃겼고, 사냥터에서 멧돼지와 맞닥뜨리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웃었습니다. 웃고 나서야 옆자리가 신경 쓰일 정도였습니다.
오정세는 대사를 과하게 꾸미기보다 최성곤의 자신감과 뻔뻔함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자신이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발라드 왕자라고 믿는 듯한 표정이 워낙 확고해서, 상황이 황당해질수록 더 웃겼습니다.
강동원을 보러 갔다가 오정세가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사실입니다. 다만 이 영화를 오정세 혼자 살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가 웃음의 가장 큰 변수가 된 것은 맞지만, 관객들이 그의 등장만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리는 순간까지 포함해서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보는 코미디
<와일드 씽>은 빈틈없이 잘 짜인 코미디는 아닙니다. 여러 인물과 사연을 한꺼번에 끌고 가다 보니 이야기의 중심이 잠시 흔들리는 부분도 있고, 좋은 재료를 전부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트라이앵글 세 멤버의 대화를 조금 더 빠르고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면 웃음의 밀도는 더 높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음악과 배우들의 변신은 확실합니다. 2000년대 혼성그룹과 가요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의상과 음악, 무대 곳곳에서 반가움을 느낄 만합니다. 결말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 영화에서는 어디에 도착하느냐보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웃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손재곤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복합적인 장르보다 오락적인 재미가 강하고 극장에서 봤을 때 활력이 느껴지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본 날에는 그 웃음이 꽤 많았습니다. 영화 속 장면이 웃기기도 했지만, 뒷줄에서 먼저 터진 웃음이 옆자리로 번지고 다시 제게 넘어오는 과정까지 재미있었습니다. 상영관을 채운 웃음소리를 포함해 하나의 공연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와일드 씽〉은 2026년 7월 31일부터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혼자 봐도 웃길 영화지만, 제가 한 번 더 본다면 친구나 가족과 같이 볼 것 같습니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옆자리 눈치가 보일 만큼 크게 웃었고, 며칠 동안 회사에서도 〈니가 좋아〉를 흥얼거렸습니다. 그날의 저에게는 그걸로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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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와일드 씽> 포토
※ 참고 자료
- 영화 <와일드 씽> 공식 작품 정보 및 뮤직비디오
- 영화 <와일드 씽> 감독 및 배우 인터뷰
- 넷플릭스 공개 일정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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