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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리뷰|왕이 아닌 아이로 밥을 먹었던 시간

by 그린팝콘 2026. 6. 25.
📖 목차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공식 포스터

유배된 어린 왕과 그를 맞이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리뷰입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기본 정보와 줄거리

기본 정보

  • 개봉: 2026. 02. 04.
  • 장르: 시대극, 드라마
  • 감독: 장항준
  • 각본: 황성구, 장항준
  • 출연: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박지환, 이준혁, 안재홍
  • 러닝타임: 116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왕과 사는 남자〉는 〈기억의 밤〉과 〈리바운드〉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영화입니다. 유해진이 광천골 촌장 엄흥도, 박지훈이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 이홍위, 유지태가 한명회를 연기했습니다.

줄거리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된 이홍위는 강원도 영월의 외딴 유배지로 보내집니다. 가난한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는 유배인을 받아들이면 마을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계산으로 그를 맞지만, 예상과 달리 삶의 의지를 잃은 어린 선왕과 마주합니다.


처음에는 마을의 이익만 생각하던 엄흥도는 이홍위와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누면서 점차 그의 처지를 외면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역사에 남은 단종의 비극보다, 두 사람이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갔는지를 따라갑니다.

 

2.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관람 포인트

  • 왕의 격식을 놓지 않으려는 이홍위의 자세와 말투가 광천골 생활을 거치며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박지훈의 연기
  • 이홍위의 흰 도포가 긴 유배길에서 점차 해지고 더러워지는 모습과 광천골 사람들의 거친 옷감으로 신분과 생활의 차이를 보여주는 의상
  • 높은 담을 세우는 대신 굽이치는 강과 절벽을 화면 안에 남겨, 탁 트인 풍경 속에서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홍위의 고립을 보여주는 배소의 공간 구성

3. 관람평|왕이 아닌 아이로 밥을 먹었던 시간

친구에게 카톡이 왔을 때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박지훈 눈이 너무 슬퍼. 진짜 너무 울었어. 눈이 부어서 지하철을 못 타겠다…"

저는 밥을 먹던 도중에 바로 예매를 했습니다.

 

사극을 잘 안 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괜히 역사 공부를 하러 가는 기분이 들어서요. 계유정난, 단종, 엄흥도. 교과서에서 이름 외우느라 바빴던 그 시절 이후로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지나간 이야기이고, 결말도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영화는 뭔가 느낌이 달랐습니다. 눈이 부어서 지하철을 못 탄다니. 대체 어느정도길래…?

 

극장에 들어가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나도 울겠다. 그런데 초반엔 엄흥도 때문에 오히려 웃게 되더라고요. 가벼운 마음으로 웃을 수는 없었지만요.

왕은 다슬기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왕이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있다는 게요.

 

박지훈이 연기하는 이홍위, 그러니까 단종은 어릴 때부터 격식에 맞춰 먹고 입고 앉아있던 아이입니다. 12세에 왕이 됐고, 이듬해에는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잃었습니다. 그러고나서 2년 후에는 숙부에게 왕위도 빼앗겼습니다.

 

그러니까 이 어린 아이가 자기 의지로 뭔가를 해본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제대로 놀아보거나, 먹고 싶은 걸 먹어보거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둬본 기억 같은 것들이요. 왕이라는 자리에 아이를 지키는 척 가둬 놓았던 거죠.

 

광천골에서 처음 다슬기를 먹은 이홍위는 자신이 직접 새벽부터 잡아온 것이라고 생색내는 엄흥도에게 웃으며 말합니다. “알겠다. 기억하마.”

 

왕으로 살 때는 누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알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광천골에서는 자신이 먹는 한 그릇 속에 담겨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수고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홍위는 자신을 위해 애쓴 한 사람들의 마음도 처음 제대로 알아본 거죠.

밥 먹고 잠들고 웃는 평범한 것들이 클라이맥스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공들여 만든 장면들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장면들입니다.

 

이홍위가 처음으로 다슬기를 먹고, 흰쌀밥에 생선구이를 놓고 마을 사람들과 같은 밥상에 앉습니다. 누군가 먼저 잠들면 그 옆에 따라 눕고, 별것 아닌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습니다. 영화 중반부에는 이런 장면들이 오래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무거운 역사극에 잠시 숨통을 틔워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평범한 시간들이야말로 영화가 진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사극의 클라이맥스라고 하면 보통 전투나 대립, 결정적인 선택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가 본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이홍위가 다슬기를 먹고 맛있다고 웃는 순간이었습니다. 왕도 폐주도 아닌, 그냥 한 아이가 되어 밥을 먹은 순간이니까요.

 

이홍위가 광천골 사람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웃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그 웃는 모습이 좋았지만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이홍위가 이 마을을 좋아할수록, 사람들과 가까워질수록 잃을 것도 많아진다는 걸 알면서 보고 있으려니 그 상황이 불편했습니다. 그 웃음이 얼마나 짧게 끝날지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니까요.

엄흥도의 선택이 거창하지 않은 이유

유해진이 연기하는 엄흥도는 처음부터 대의명분 같은 게 없습니다.

 

유배지를 유치하면 마을 살림이 나아진다는 현실적인 계산으로 움직이는 촌장이잖아요. 충성심이나 의리를 품고 찾아온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달라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밥을 같이 먹다 보니, 잠드는 걸 옆에서 보다 보니, 슬쩍 신경이 쓰여버린 겁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생기는 순간은 대개 그런 식이니까요. 대단한 결심보다 슬그머니 쌓이다가 어느 날 돌이킬 수 없어지는...

 

유해진 배우는 이홍위를 오래 바라보다가 쉽게 돌아서지 못합니다. 유배지를 마을의 돈벌이로만 보던 사람이 이제는 그곳에 온 아이를 두고 돌아서지 못하는 겁니다. 엄흥도는 결국 이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을 걸게 되겠구나. 아직 충성도 의리도 입 밖에 내지 않았는데, 마음은 이미 이홍위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그 마음이 엄흥도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원래 CG로 넣을 예정이었던 노랑나비가 실제 촬영 중에 우연히 날아와 유해진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그 장면이 그대로 엔딩에 쓰였다고 합니다. 영화를 볼 때도 이상하게 눈길이 머물렀던 기억이 있어서 나중에 알고나니 더 신기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CG인줄 알았고 단종의 넋을 상징한 거겠네… 생각했는데 자신을 끝까지 지켜준 유일한 어른이었던 엄흥도에게 실제로 인사하러 왔다간 건 아닐까 까지도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합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유지태가 연기하는 한명회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보통 사극에서 간신은 음흉하게 생겼거나 비굴하게 웃거나 합니다. 이 영화의 한명회는 그냥 크고 단정하고 조용하게 말합니다. 한명회의 신도비명에는 그가 얼굴이 준수하고 체격이 커서 무리 가운데서도 돋보였다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기존 사극의 왜소하고 음흉한 한명회와 전혀 다른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훨씬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무서운 사람이 처음부터 음습한 얼굴로 등장하면 적어도 악인이라고 알아보고 경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당한 말만 골라 점잖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차리기가 더 어렵습니다. 왜냐면 틀린 말처럼 들리지 않으니까요. 100킬로에 달하는 몸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화면 밖으로도 느껴지는데, 그 큰 몸이 조용한 목소리와 결합될 때 훨씬 더 무서워집니다.

 

장항준 감독은 인터뷰에서 성공한 불의를 인정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 과연 인간적인가라는 질문에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명회를 그런 방식으로 그린 것도 같은 질문의 연장선이었습니다. 역적이라는 명분으로 단종의 측근들을 처단하는 장면마다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역적을 만든 건 어느 쪽이었을까. 영화가 그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리고 활줄

결말에 활줄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 극장이 조용해졌습니다. 훌쩍이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교과서 속 단종의 죽음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 떠오른 건 폐위된 왕의 비극보다, 광천골에 와서야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생기고 함께 밥을 먹을 사람을 얻은 어린 이홍위였습니다.

 

지금 열다섯 살 아이들을 보면 정말 어립니다. 어른인 척 말하고 제법 의젓하게 행동할 때도 있지만, 가만히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아직 애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홍위도 그 나이였습니다. 다슬기가 맛있다고 웃고, 자신을 위해 애쓴 사람의 수고를 기억하겠다고 말하던 아이. 그 아이에게 허락된 평범한 날들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자꾸만 잠을 밀어냈습니다.

 

친구한테 짧게 연락을 했습니다.

"봤어."

그 두 글자만 보냈는데 친구가 바로 알아들었습니다.

"그치."

그것도 두 글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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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갈라지고 뒤엉킨 사람들의 관계를

더 깊이 바라보는 작품입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토, 넷플릭스 코리아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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