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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영화 <백수아파트> 리뷰|소리는 들리는데 얼굴을 모른다는 것

by 그린팝콘 2026. 7. 7.
📖 목차

영화 백수아파트 포스터
▲ 영화 <백수아파트> 포스터

새벽 4시마다 들리는 층간소음의 정체를 쫓는 백수의 이야기. 영화 <백수아파트> 리뷰입니다.
※ 스포주의|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영화 <백수아파트> 기본 정보와 줄거리

기본 정보

  • 개봉: 2025. 02. 26.
  • 장르: 미스터리, 드라마, 코미디
  • 감독·각본: 이루다
  • 출연: 경수진, 고규필, 이지훈, 김주령, 최유정
  • 러닝타임: 98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백수아파트〉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층간소음을 코믹한 추적극으로 풀어낸 이루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2020년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수상했으며, 배우 마동석이 제작자로 참여했습니다.

줄거리

동네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민원에 빠짐없이 나서는 오지라퍼 백수 거울은 동생 두온과 다툰 뒤 반강제로 독립하게 됩니다. 급하게 구한 백세아파트에 입주한 첫날, 거울은 새벽 4시부터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는 정체불명의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칩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 소리가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진원지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잠시 살다 떠날 생각이었던 거울은 소음을 외면하지 못하고 경석, 지원, 샛별을 비롯한 주민들과 함께 범인 찾기에 나섭니다.


거울 일행은 층별 소음 크기를 측정하고 의심스러운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단서를 모읍니다. 그러나 소리를 추적할수록 문제는 한 이웃의 생활 습관을 넘어, 백세아파트에 감춰진 사정과 주민들의 이해관계로 이어집니다.

 

2. 영화 <백수아파트> 관람 포인트

  • 새벽 4시마다 반복되는 소리가 단서와 오해를 동시에 만드는 방식
  • 개인의 층간소음 갈등이 낡은 아파트와 재건축을 둘러싼 문제로 확장되는 흐름
  • 심각한 갈등을 주민들의 합동 추적과 코미디로 풀어내는 장르의 균형

그린팝콘 픽|백수의 시간을 응원하는 영화

소음의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면서, 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직장인이나 경찰이 아니라 ‘백수’인지도 눈여겨보세요. 거울은 스마트폰으로 층별 데시벨을 측정하고, 아파트의 모든 호수를 찾아다니며 주민센터 문서까지 조사합니다. 다른 주민들이 생업과 일상 때문에 참고 넘겼던 문제에 자신의 시간을 전부 사용합니다.


이루다 감독은 원래 층간소음을 다룬 이야기와 백수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따로 구상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 자신도 일을 쉬는 기간을 보내고 있었으며, 모든 백수에게 아직 잠재력이 남아 있다는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층간소음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능동적인 인물이 필요했고, 그 결과 시간이 많고 오지랖도 넓은 거울이 탄생했습니다.


사회에서는 거울의 많은 시간을 무능력의 증거처럼 바라보지만, 영화 안에서는 그 시간이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추적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백수아파트〉의 ‘백수’는 단순히 웃음을 만드는 설정이 아닙니다. 모두가 바빠서 외면한 문제를 끝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 참고 자료: 씨네21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까?, 〈백수아파트〉 이루다 감독」

3. 관람평|소리는 들리는데 얼굴을 모른다는 것

예전에 반지하 자취방에 살 때 밤마다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려고 누우면 어김없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위층이겠거니 했는데, 소리 방향이 묘하게 달라서 확신이 서질 않았습니다. 벽을 타고 오는 건지, 옆에서 오는 건지. 반지하라는 구조 탓인지 소리가 사방에서 오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다 보면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발소리인지 물건을 떨어뜨린 건지, 리듬이 일정한지 불규칙한지. 잠을 자야 하는데 소리를 분석하고 있는 겁니다.

 

그때 저를 괴롭힌 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습니다. 소리의 주인을 모른다는 사실이 저를 더 갉아먹었습니다. 얼굴을 알면 화라도 낼 수 있는데, 얼굴 없는 소리한테는 감정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복도에 나가봤다가 아무것도 확인 못 하고 그냥 들어온 날도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고, 어느 날 소리가 멎었는지 이사를 간 건지도 모르고 이사를 나왔습니다. 영화 〈백수 아파트〉를 보면서 그 반지하 시절 밤이 자꾸 겹쳤습니다.

아파트라는 이상한 구조

아파트는 본래 좀 이상한 공간입니다. 위아래 옆으로 수십 명이 붙어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모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한두 번 마주쳐도 이름을 모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갖고 있는지, 몇 살인지, 혼자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발소리는 압니다. 새벽 두 시에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소리도 압니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가끔 터지는 웃음소리, 문 닫히는 강도까지 어느새 외우게 됩니다. 얼굴은 모르고 생활소음을 먼저 외우는 이웃 관계. 저는 이게 참 묘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시절 이웃에게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쿵쿵 아저씨'라고요.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소리를 기반으로 상상한 사람이었습니다.

 

쿵쿵거리는 걸음걸이로 봐서 아마 남자일 거다,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으니 야행성일 거다, 술을 마시는 날은 발소리가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해 제법 구체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습니다. 그 이미지는 물론 제 상상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백수아파트>는 이 기묘한 구조 위에 이야기를 올립니다. 주인공 안거울은 새로 이사한 백세아파트에서 매일 새벽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를 찾아 나섭니다.

 

코미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이 사람이 진짜 하고 싶은 건 그 소리에 얼굴을 붙이는 일처럼 보였습니다.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알면 그때부터는 대화가 가능합니다. 모르는 동안은 그냥 불안이고, 불안은 생각보다 오래 사람을 갉아먹습니다.

소리와 상상 사이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기본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누군가 소리를 내고 있고, 주인공은 그 사람을 찾습니다. 중간에 계획은 자꾸 어긋나고, 주인공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웃기게 흘러가기 때문에 무겁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웃다 보면 어느새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안쪽으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이 소리의 주인을 마침내 마주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얼굴 없는 소리일 때는 막연히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었지만, 막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거나 용서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정체를 모를 때 머릿속에서 키운 존재와 실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분명 달랐습니다. 그 온도차가 영화 전체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았습니다.

 

층간소음 갈등이 극단으로 흐른 뉴스를 가끔 봅니다. 소리가 쌓이면 그 소리의 주인이 머릿속에서 점점 커진다는 게 이해가 됩니다. 직접 본 적도 없는데 혼자 최악의 사람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분노를 키우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가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 메커니즘을 웃기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서늘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쿵쿵 아저씨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지 처음으로 궁금해졌습니다. 무서운 사람이었을까요. 그냥 피곤한 사람이었을까요. 저처럼 잠을 못 자면서 자기 발소리가 그렇게 큰 줄도 몰랐던 사람이었을까요.

반지하 시절의 내가 틀렸던 것

저는 그때 소리의 주인을 찾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얼굴 없는 소리를 참는 건 그래도 할 수 있는데, 막상 문을 두드렸다가 어떤 사람이 나올지 모른다는 게 더 두려웠습니다. 좋은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데, 저는 왜인지 나쁜 사람을 먼저 상상했습니다.

 

그 공포의 정체가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됩니다. 익명의 불쾌함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냥 소음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구체적인 갈등이 되는 순간, 즉 얼굴과 얼굴이 맞닥뜨리는 순간이 두렵습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그 심리를 교묘하게 허용합니다. 서로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면 큰 싸움은 없습니다. 작은 해결도 없습니다. 각자 참거나 떠납니다. 저처럼요.

 

생각해 보면 층간소음을 참는 동안 저는 계속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나쁜 사람을 상상하고, 그 상상 위에 분노를 쌓고. 실제로는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머릿속에서 혼자 싸우고 있었던 겁니다.

 

안거울은 그 싸움을 밖으로 꺼냈습니다. 저와의 유일한 차이는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맞닥드리는 그 시점이 오기 전에 그냥 이사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쿵쿵 아저씨의 얼굴은 영영 알지 못했습니다.

같은 소리를 들은 사람들

극장을 나오면서 지금 사는 집 윗집 사람 얼굴을 생각했습니다. 모릅니다. 몇 년째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데 모릅니다. 가끔 발소리는 들리고, 아침마다 물 내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오는지 발소리가 달라지는 날도 있고,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다 들리는데 얼굴은 모릅니다.

 

저는 이분을 마음속으로 '슬리퍼 씨'라고 부릅니다. 슬리퍼를 끌며 다니는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들리거든요. 다만 이제는 슬리퍼 씨의 소리가 거슬리는 날에도, 제가 소리만으로 만들어낸 얼굴과 실제 사람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할 것 같습니다.

 

〈백수 아파트〉는 그 이상한 동거에 대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극장 안에는 웃음소리가 여러 번 터졌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저는 괜히 같이 나오는 사람들 얼굴을 한 번씩 봤습니다. 낯선 사람들인데 조금 전까지 같은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라는 게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들의 발소리는 모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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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백수아파트>, <사람과 고기> 포토
※ 참고 자료: 영화 <백수아파트> 공식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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