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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나무위키

     

    몇 년 전 겨울, 너무 추웠던 날 폐지를 주우시던 할머니께 제 주머니 속 손난로를 건네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동생도 횡단보도에서 무거운 리어카를 힘겹게 끌던 어르신을 뒤에서 함께 밀어드린 적이 있다고 했고요. 저희 엄마는 동네에서 폐지를 줍던 할아버지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며, 리어카만 보이는데 할아버지가 괜찮으신지 걱정하시곤 합니다. 요즘 들어 유독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예전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영화 <사람과 고기>를 보고 나니 그때 스쳐 지나갔던 얼굴들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 저릿했습니다. 사람과 고기는 제목만큼이나 담백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폐지를 주우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형준과 우식, 채소를 팔며 살아가는 화진. 세 노인의 평범한 하루가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공감 — 외로운 노년의 초상

    영화는 폐지 쟁탈전으로 몸싸움까지 벌이던 형준과 우식이 화해하며 소고기뭇국을 끓여 먹기로 약속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방향을 바꿉니다. 폐지는 킬로그램당 60원, 하루 종일 모아도 손에 쥐는 돈은 천 원 남짓. 숫자는 짧게 지나가지만 그 현실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영화 속 형준과 우식도 어쩌면 우리가 거리에서 스쳐 지나갔던 누군가일지 모릅니다. 알고 보니 우식은 간암 말기 환자였고, 형준은 연락이 끊긴 아들들 명의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니 왜 고기 한 점이 그렇게 간절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영화가 이들의 삶을 과장하거나 불쌍하게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담담하게 따라갈 뿐인데도 오히려 더 먹먹했습니다. 배우들 역시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보다 말없이 걸음을 옮기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긴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의 무게를 전해줍니다.

     

    온기 — 함께 나누는 밥 한 끼

    세 사람이 돈도 없이 고깃집을 드나드는 이야기는 얼핏 보면 황당한 일탈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들이 정말 원했던 건 비싼 고기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쩌면 고기보다 더 간절했던 건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진에게는 가끔 찾아오는 손자가 있습니다. 반가운 얼굴로 나타나지만 결국 용돈 이야기로 대화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손자를 향한 사랑은 일방적이어서, 화진은 그게 사랑인 줄도 모른 채 손을 내밀어주는 존재라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 허전함이 있었기에 형준과 우식과 함께하는 시간이 화진에게도 더욱 특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집도 예전에는 고기를 구워먹는 날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곤 했습니다. 고기를 굽고, 쌈채소도 씻고, 항아리에서 마늘장아찌도 꺼내면서 다 같이 준비해서 다 같이 먹었지요. 그래서인지 영화 속 식탁은 특별한 음식보다 함께 있는 사람이 더 소중했던 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습니다.
    재판장이 이들에게 상습사기 혐의를 냉담하게 적용하는 장면에서는 개인의 잘못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이 함께 보였습니다. 영화는 큰 목소리로 사회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조용하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여운 — 사람과 고기 사이

    남몰래 이어가던 작은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며 별명까지 붙고, 결국 그 유명세 때문에 정체가 드러납니다. 조용히 이어가고 싶었던 시간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세 사람이 느꼈을 부끄러움과 서글픔이 화면 너머까지 전해졌습니다.
    영화 제목인 사람과 고기는 마지막에 가서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감독은 끝까지 누구도 평가하거나 단죄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걸음 떨어져 이들의 삶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건 붙잡힌 뒤 우식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형준, 화진과 함께 고기를 먹으러 다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그 일탈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오랜만에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화려하지 않아도 조용히 가슴에 스며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나이 든 배우들은 주름만으로도 연기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세 배우의 얼굴을 보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했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나 자극적인 전개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사람과 고기는 조용히 한 번 만나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의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kwL9o0k1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