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터만 봤을 때는 그냥 귀여운 도마뱀이 나와서 아이들과 장난 치고 사고 치는 흔한 애니메이션인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초반엔 그런 장면들이 있습니다. 탈출을 꿈꾸는 늙은 도마뱀이 우당탕탕 사고를 치는 장면들이요.
하지만 늙은 도마뱀 레오가 아이들의 비밀을 들어주며 건네는 위로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뭉클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제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툭 튀어나왔습니다.
어릴 적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쏟아질 잔소리가 눈에 선했으니까요. 하지만 할머니 댁으로 피신(?)을 가면 늘 마음이 푹 놓였습니다.
잘했든 못했든 그저 묵묵히 “그랬냐” 하시면서 끝까지 제 푸념을 들어주셨거든요. 그러시곤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꼬깃꼬깃한 사탕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여주셨죠. 그게 전부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레오>를 보면서 딱 그때 그 느낌이 생각났습니다.
※ 본 포스팅은 작품의 주요 줄거리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만 내 말을 들을 수 있어”라는 다정한 거짓말
레오는 자기가 말할 수 있다는 걸 숨기려고 아이들마다 똑같은 거짓말을 합니다.
"너만 내 말을 들을 수 있어."
사실 뻔한 거짓말인데, '내가 선택받았다'고 믿은 아이들은 아무한테도 못 했던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해요. 말이 너무 많아 친구들과 어울리기 어려운 서머, 부모가 붙인 감시 드론에서 벗어나고 싶은 아이, 늘 대단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사는 제이다까지. 레오는 아이마다 다른 속사정을 하나씩 듣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할머니 댁에서 저도 비슷한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잘한 일을 늘어놓거나 제 잘못을 변명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할머니는 그저 제 옆에서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셨을 뿐입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내 편이 되어서 그냥 들어주는 존재였던 거죠. 어릴 적 할머니가 주신 사탕이 달콤했던 이유도 사탕 맛 자체보다 "여기서는 혼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던 것처럼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특별했던 엉성한 위로
그렇다고 레오가 늘 현명한 답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미아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가 그랬죠. 레오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면서 울지 말라고 엉뚱한 노래까지 불러댑니다. 어떻게든 눈물을 멈추게 하려고요. 하지만 슬픔이라는 게 조언 몇 마디로 해결될 리 없잖아요.
결국 레오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냥 미아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나중에 레오도 솔직하게 털어놓죠.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몰라 그냥 들었는데, 이상하게 그게 도움이 됐다고요.
레오의 방식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당황해서 허둥대는 모습은 엉성하기까지 했죠. 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완벽한 정답'을 가르치려 들 때, 레오는 그저 정답이 없는 슬픔 곁에 가만히 앉아있어 줬으니까요.
“너희 가족, 대단하지 않아”가 준 해방감
레오가 완벽주의에 갇힌 제이다에게 건넨 말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잘나가는 부모 밑에서 항상 최고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사는 제이다에게 레오는 오히려 "너희 가족,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라고 툭 던지거든요.
어떻게 보면 좀 직설적인 말인데, 제이다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편안해합니다. 굳이 항상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비로소 주변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게 된 거죠.
어릴 적 제 할머니의 방식, '특별하지 않아도 너는 그 자체로 귀하단다'라는 무언의 위로와 닮아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꼭 특별하고 뛰어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 존재가 아무렇게나 다뤄져도 된다는 뜻도 아니고요.
<레오>가 말하는 '특별함'은 완벽한 정답을 건네는 게 아니라, 엉성하더라도 누군가 내 곁에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그 시간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볍게 보려다가 뜻밖에 마음이 뭉클해졌던 영화였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레오> 작품 정보
2023년 공개된 <레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코미디와 뮤지컬 요소가 섞인 가족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러닝타임은 102분이고 전체 관람가입니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아이와 함께 볼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를 찾고 계신 부모님
-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타인의 시선에 지친 분
- 아무런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주는 위로가 필요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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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한 두 주인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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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코리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참고 자료: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레오> 공식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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