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저는 이 영화 티모시 샬라메 때문에 예매했습니다. 이 배역을 위해 2018년부터 탁구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서 어느정도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거든요. 프렌치 디스패치, 듄 파트2, 웡카 촬영을 오가면서도 이동할 때마다 라켓을 챙겨 연습을 이어갔다고 하니, 이 역할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7년 가까이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본인 스스로도 "내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 가장 나다운 모습을 담고 있다, 이게 바로 커리어를 갖기 전의 내 모습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그 노력은 숫자로도 증명이 됐습니다. 각종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26개를 휩쓸었다는 기록까지 더해지니, 기대는 자연스럽게 최고조로 올라갔습니다.

     

    반전: 예고편이 다 페이크였다

    저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상상했습니다. 밑바닥에서 출발해 엄청난 근성과 재능으로 정상에 오르는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습니다. 이건 제가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예고편은 거의 미끼에 가까웠습니다. <마티 슈프림>은 전기 영화도, 스포츠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 꿈을 위해서라면 삼촌 가게 금고를 털고, 유부녀 소꿉친구와 얽히고, 유명 여배우한테 무례하게 들이대는 한 남자의 소동극에 가까웠습니다. 149분 내내 마티라는 인물이 사고를 치고 수습하고 또 사고를 치는 걸 지켜보면서, 저는 응원해야 할지 거리를 둬야 할지 계속 흔들리게 되더군요. 같이 본 친구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얘 그냥 사이코패스 아니야?"라고 했는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상하게 눈이 계속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위험한 매력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게 바로 조쉬 사프디 감독이 노린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질주: 티모시 샬라메의 광기 어린 얼굴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티모시 샬라메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듄에서 봤던 그 소년 같은 얼굴이 여기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에 가까운 대사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데, 보고 있으면 불쾌해서 화가 나면서도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상대 선수들에게 던지는 독설들은 지금 시대였다면 바로 논란이 될 만한 수위였는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완성이 됐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한 경기 장면들을 보면 그 7년의 준비가 단순한 홍보가 아니었다는 게 바로 느껴집니다. 문득 옆자리에 앉아있던 낯선 관객이 경기 장면마다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던 게 기억나는데, 저도 모르게 똑같이 숨을 참고 보고 있더라고요. 1만 시간을 채운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영화 속 마티는 그 정도 노력쯤은 우습다는 듯 더 무모하고 처절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니 그 온도 차 자체가 이 영화의 에너지였습니다.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편집과 신스팝 사운드트랙까지 더해지니, 극장을 나설 때쯤엔 저도 같이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튕겨 다닌 기분이었습니다.

     

    잔상: 탁구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이 작품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조금씩 이해가 갔습니다. 1950년대 미국이라는 배경, 유대인과 흑인 캐릭터들이 겪는 차별, 패전국 일본을 대하는 미국의 이중적인 태도까지, 곳곳에 시대에 대한 뾰족한 시선이 숨어 있었습니다. 마티라는 인물도 단순한 문제아라기보다, 그 시대 안에서 왜곡된 방식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었던 인물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상영관을 나오면서 뒷좌석에 있던 커플이 "저 정도로 미쳐야 뭐라도 되는 건가"라며 씁쓸하게 웃던 게 오래 남았는데,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티가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감정의 정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답을 정해놓지 않고 관객에게 판단을 맡기는 결말이라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러닝타임이 149분이라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해본 적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극장에서 만나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e1bj2h6SqIk
    https://www.youtube.com/watch?v=17GE21_0duo